겨울 이야기
겨울 이야기
  • 뉴제주일보
  • 승인 2021.01.05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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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훈식 시인·조엽문학회 회장

코로나19 때문에 되도록 외출을 삼가고 있다. 이 겨울을 조심해서 보내야 새봄엔 백신을 맞게 되므로 컴퓨터 앞에서 신년연휴를 보내고 있다.

지난해 1231일에 도로마다 눈이 쌓여서 추위와 함께 겨울 맛을 제대로 느꼈다.

오늘도 이렇게 흘러가고, 아는 사람끼리는 다정했었는데 지금은 만나기가 어렵다. 내리는 함박눈이 뺨에 녹으면 홀로 있는 시간이 나를 고요하게 하고, 스스로 뉘우치고 깨닫는 마음이 생겨서 삶이 고맙다고 해야 하는데 지금은 코로나 팬데믹 사태가 두렵다.

몇 년 전만 하드래도 설경을 구경하려고 한라산 횡단도로에 차를 세워놓고 눈 쌓인 숲길을 잠시 거닐었다. 눈밭에 동백꽃이 붉게 떨어진 모습에서 투신라는 동백꽃말로 시를 썼다.

한라산에 눈이 쌓여 처녀의 흰 살결이 고와서 잎맥 푸른 동백나무를 끌어안은 겨울바람 달려가서 씩씩거리면 동백꽃이 눈 위에 나뒹굴어 한라산이 생리를 하느라고 몸살을 앓는다. 그래야만 발목 붉은 봄이 태어나서 등 푸른 생선처럼 한라산이 푸르면 들짐승이 풀이나 열매를 먹고 산다는 자연 친화를 표출했다.

더해 천지에 눈보라 휘날리면 깊은 산 겨울은 춥고 음산하다. 얼어붙은 강은 더욱 적막하고 벌거벗은 나무들이 불쌍하다. 그러나 나무들은 흐느끼면서도 봄이 온다는 것을 믿고 있다. 산기슭마다 눈사태가 나면 얼어 죽지 않으려고 마을로 내려온 부엉이들도 비축해 두었던 힘은 끝없는 사랑이므로 추위를 참고 있다.

누구에게나 겨울 정취가 있다. 金笠(김립)이 지은 명시 詠雪(영설)’을 읊조려본다.

 

天皇崩乎人皇崩(천황붕호인황붕) 천황씨가 죽었는가? 인황씨가 죽었는가?

萬樹靑山皆被服(만수청산개피복) 만수청산이 모두 흰옷을 입었구나

明日若使陽來弔(명일약사양래조) 내일 햇님이 조문을 오게 되면

家家簷前淚滴滴(가가첨전루적적) 집집마다 처마 끝에서 눈물 뚝뚝 흘리것네

 

그런가 하면, 영상시의 대가 김광균 시인의 설야(雪夜)도 너무나 절창이다.

어느 먼 곳의 그리운 소식이기에 이 한밤 소리 없이 흩날리느뇨로 시작해 마음 허공에 등불을 켜고 내 홀로 밤 깊어 뜰에 내리면 먼 곳의 여인의 옷 벗는 소리로 이어지는 영상이 영화 한 장면처럼 넘실거린다. 그래서 과거는 회상 속에 새로운 현실이 된다고 겨울을 주제로 영상시를 썼다.

함께 고통을 나누지 못했던 아픔도 있지만 아름다웠던 부분은 꿈꾸게 하여 허공에 손을 내밀게도 하는 것은 새로운 시간 속에서 낡은 사진을 들여다보며 추억의 파편을 줍고 있다. 그러므로 지금도 창 밖에는 먼 길 떠난 사람들이 보내는 선물 같이 흰 눈이 펑펑 쏟아지고 있다고.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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