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사표와 방명록
출사표와 방명록
  • 고경호 기자
  • 승인 2021.01.03 14: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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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삼국시대 때 촉한(蜀漢)의 제갈량은 군사를 이끌고 위나라를 토벌하러 떠나는 날 아침 제2대 황제인 유선 앞에 ‘출사표’(出師表)를 바쳤다.

‘반드시 북방을 수복하라’는 제1대 황제 유비의 유언에 따라 위나라 토벌에 나서며 남긴 그의 출사표에는 대의를 위해 전장에 투신하는 신하의 충심과 비장한 각오, 유비와의 의리, 그리고 백성을 위하는 ‘진정성’이 그대로 담겨있다.

그래서 지금에 이르러 수많은 정치인들은 ‘출마의 변’을 공식적으로 밝힐 때 ‘출사표를 냈다’며 진정성을 드러낸다.

그리고 출사표보다 더욱 진정성을 담는 글이 하나 더 있다. 4·3평화공원 위패봉안실의 방명록이다.

지도자와 정치인은 새해마다 4·3평화공원을 찾아 4·3 영령들을 추모한다. 또 선거에 출마할 때, 당선 후, 임기를 시작하면서 등 자신의 비장한 각오와 진정성을 알려야 할 때마다 이곳을 찾아 헌화·봉헌 후 방명록을 쓴다.

그러나 방명록의 내용은 십수년 째 변함이 없다. 4·3의 완전한 해결을 통해, 또 4·3특별법 개정을 통해 영령들의 넋을 반드시 위로하겠다는 다짐과 기대가 매년 방명록을 채우고 있다.

수많은 지도자와 정치인이 자신의 진정성을 행동으로 옮겼다면 4·3의 완전한 해결은 진전했겠지만 현실은 제자리걸음일 뿐이다.

신축년 새해 방명록에도 예년과 다름없이 ‘4·3특별법 개정으로 큰 진전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4·3 완전 해결의 원년을 기대합니다’, ‘4·3특별법 개정안 통과와 4·3의 완전한 해결을 통해 화해와 상생이 활짝 피어나는 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라고 적혀 있다.

과연 내년에는 ‘도민 모두의 염원대로 4·3의 완전한 해결을 이뤄냈습니다. 이제는 편히 쉬십시오’라고 적힌 방명록을 볼 수 있을까.

고경호 기자  kkh@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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