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언 ‘훅다, 훌근’
방언 ‘훅다, 훌근’
  • 뉴제주일보
  • 승인 2020.12.13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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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김공칠.전 제주대 교수

송의 손목이 지은 계림유사(1103년)에 실린 고려어(개성방언)의 조사항목의 한 예로 대왈흑근(大曰黑根)이 보인다. 앞 부분 大는 한자어(중국어, 중한공통으로 크다), 曰 다음은 당시의 고려어, 한자의 음을 가지고 나타낸 것이다.

이 부분을 손목 자신이 썼다면 당시의 송대음을 가지고 기록했을 것이고, 고려인이 도와서 썼다면 송대음을 잘 아는 사람은 송대음으로 아니면 당시의 한국한자음으로 기록했을 것인데 결국 그때 고려어의 조사는 송나라 사람을 위한 것이었다면 손목 자신이든 고려인이든 송대음으로 썼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이 ‘黑根’의 풀이에 대해 지금까지 ‘흑근’(방종현, 방언에 흑근 먹었다의 예를 들고)으로, 혹은 ‘큰’(일인학자 Maema, 그리고 진태하, 근(根)에 흑(黑)자를 얹혀서 <h+k> 유기음 kh가 되도록 했다는 것)이 보인다.

필자는 제주방언의 ‘훅다’의 관형형 ‘훌근’과 관련되는 것으로 본다. 방언사전 중에는 훍다(굵다)가 보이는데 이러한 겹받침의 발음은 일찍이 들은 기억이 나지만 지금은 듣기가 흔하지 않다. 

어떤 사전에는 ‘훍다’의 표제에 ‘훅다’의 표음을 달기도 한다.

흑(黑)의 중국의 중고음 내지 송대음은 hək, 근(根)은 중고음 kən, 만당과 송대는 kɐn이므로 kək-kɐn 내지 hə’-kɐn인데 이 형용사의 어간을 huk, 그리고 나머지를 어미로 보면 방언과의 연결이 가능하다.

먼저 모음인데 ə음은 우리말의 ‘어’에 가까운 음이다. 서울말의 ‘어’는 입안의 중간과 뒤에서 나오는 두 가지가 있고 경상도방언은 ‘어’와 ‘으’는 거의 비슷하다. 받침 –k는 송대음에서는 약해져서 –t 혹은 촉음(ʔ)과도 교체되기도 했다. 

우리말의 ㄹ받침은 원래 ㄷ받침이었다든지 원래부터 ㄹ받침이 있었다든지 하는데 필자는 ㄹ과 ㄷ받침이 동시에 나는 소리였다고 본다. 듣기에 현대의 몽골어에서 보이는 ㄹ받침의 소리와 비슷하다. 

‘훌’이라는 발음을 나타내는 한자는 중국과 한국에 잘 없다. 그러기에 그 발음을 나타내는데 이에 근접한 ‘黑’자를 이용했을 것이다. 계림유사에서 이러한 예로 렴왈박(簾曰箔), 곧 발(가리는 것)을 ‘바+ㄹㄷ~밝’에 근접한 박(箔)의 한자를 이용한 것이었다. 다른 방언에서 볼 수 없는 특이한 제주말의 900년 전의 표제의 방언을 재생시킬 가능성을 비춰준다.

여기에 부기할 것은 방언의 훅다/훌근에 굵다(太)의 뜻 외에 크다(大)의 뜻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훍은 것=큰 것). 고려 때는 大와 太가 거의 같게 쓰지 않았나 싶다.

뉴제주일보 기자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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