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산악인의 역사 된 고봉 ‘옥빛 여신의 산’
제주 산악인의 역사 된 고봉 ‘옥빛 여신의 산’
  • 뉴제주일보
  • 승인 2020.12.03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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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부. 신들의 땅, 세계의 지붕 서티벳을 가다(13)
세거얼 체크포인트(해발 4350m)에서 본 초오유의 일출 모습. 초오유(해발 8201m)는 ‘터키 옥(玉)의 여신’ 또는 ‘청록의 여신이 거주하는 산’이라고 불리는 세계 여섯 번째 고봉(高峰)이다. 여러 해 전 박훈규 대장이 이끄는 제주산악회 팀이 등정에 성공했던 산이기도 하다.
세거얼 체크포인트(해발 4350m)에서 본 초오유의 일출 모습. 초오유(해발 8201m)는 ‘터키 옥(玉)의 여신’ 또는 ‘청록의 여신이 거주하는 산’이라고 불리는 세계 여섯 번째 고봉(高峰)이다. 여러 해 전 박훈규 대장이 이끄는 제주산악회 팀이 등정에 성공했던 산이기도 하다.

■ ‘세거얼 체크포인트’로

티벳 사찰은 북쪽으로 산비탈을 향하고 남쪽은 평지를 향하며 뒤쪽 높은 위치에는 웅위하고 화려한 경당(經堂)과 불전(佛殿)을 안치합니다. 사찰 하나를 수십년 또는 그 이상의 기간에 걸쳐 완성한다니 얼마나 오랜 세월 동안 사원을 짓는지를 느낄 수 있습니다. ‘세계의 지붕’으로 불리는 티벳 고원은 평균 4000m로  한랭하고 강수량이 적어 자연조건이 열악한 편입니다. 춥고 비가 많이 내리지 않는 이런 땅에서 살려면 그 환경에 맞는 건축 방법을 찾아야 했을 것입니다. 바로 그렇게 선택된 건축 양식이 티벳의 건축물이라 할 수 있고 대표적인 건축이 불교 건축물입니다.

7세기 티벳 고원에 토번(吐蕃) 왕국이 출현하자 내지 및 남아시아와의 관계 발전과 더불어 불교도 점차 인도와 중원에서 전해지기 시작합니다. 토번 왕 송첸캄포의 두 아내인 당나라 문성공주, 네팔 적존공주는 모두 불교를 숭상했고 이는 티벳에서의 불교 발전에 중추적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문성공주가 세운 라싸 최초 불교 건축이라 할 수 있는 러스주라캉은 지금까지 여전히 보존되는 조캉사원(대조사)의 전신이라고 합니다. 

오늘 숙박하는 건물도 전통 티벳 건물입니다. 안으로 들어서면 불을 켜지 않고서는 어두워서 한 발도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사방이 막혔고 창에는 추위를 막기 위한 두터운 커튼이 걸렸습니다. 저녁을 먹으면서 조금 전 본 초모랑마 일몰에 관해 신이 나게 이야기를 나누고 난 후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내일 아침 날씨가 맑아 초모랑마 일출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하며 잠을 청했습니다.

어제 강행군에도 피곤함을 잊은 듯 일행 모두 새벽같이 일어나 차를 타고 세거얼 체크포스트(해발 4350m)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달리는 차 속에서 새벽하늘을 쳐다보니 별들이 총총히 떠 있어 안심은 되지만 그래도 혹시 하는 초조한 마음이 듭니다. 산등성이를 오르기 시작하자 주변 풍경이 서서히 보이는데 멀리 히말라야 연봉이 나타납니다. 

가슴이 설레 조금 빨리 달렸으면 하고 운전사만 자꾸 쳐다보자 눈치를 챘는지 ‘해가 뜨려면 아직 멀었는데 왜 서두르느냐’는 표정입니다. 답답한 마음에 유리창 너머로 밝아오는 산 쪽을 바라보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산의 윤곽이 뚜렷해집니다. 마음 같아서는 ‘여기 세워서 사진 찍자’고 하고 싶었지만 발만 동동거리다 보니 목적지인 세거얼 체크포스트에 도착했습니다.

얼마나 바쁘게 카메라를 설치했는지 셔터를 누르자 작동이 안 됩니다. 서둘렀더니 뭔가 문제가 생긴 모양인데 산을 보니 해가 떠오르기 시작하는데 카메라는 작동이 안 돼 땀만 뻘뻘 흘립니다. 마음을 다잡고 천천히 카메라를 분리해 다시 조립하자 그제야 셔터가 작동합니다. 하마터면 좋은 순간을 놓칠 뻔했습니다.

안내자가 햇살에 모습을 드러내는 순서대로 산 이름을 알려주는데 저는 줌렌즈로 당겼다 밀리기를 반복하며 히말라야 봉우리 일출 장면을 하나하나 촬영하고 있습니다. 한참 사진을 찍고 있는데 “저 끝쪽의 봉오리가 바로 초오유다”라는 설명을 듣는 순간, 고개를 돌려 그 산을 바라봤습니다.

날이 밝아오자 히말라야산맥 아래로 거대한 지층이 꿈틀거리며 깨어나는 듯한 장관이 펼쳐져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날이 밝아오자 히말라야산맥 아래로 거대한 지층이 꿈틀거리며 깨어나는 듯한 장관이 펼쳐져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 친구 박훈규를 떠올리다

초오유는 해발 8201m로 세계 여섯 번째 고봉(高峰)입니다. 초오유의 ‘초’는 신성(神聖)을, ‘오’는 여신을, ‘유’는 터키 옥(玉)을 의미한답니다. 즉 초오유는 ‘터키 옥의 여신’ 또는 ‘청록 여신이 거주하는 산’이란 뜻이랍니다.

‘여러 해 전 제주산악회 팀이 올랐던 바로 그 초오유구나.’ 문득 친구 박훈규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당시 등반대장이었던 박훈규는 등반보고회에서 초오유 정상에 올라 감격스러웠던 순간을 이야기하며 잠시 눈시울을 적셨습니다. ‘초오유 일출, 친구 훈규에게 전해줘야겠다’고 생각하며 한참을 촬영했답니다. 

날이 완전히 밝아오자 히말라야산맥 밑으로 마치 화산이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지형이 신비롭게 다가와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거대한 화산 이류구(泥流丘)처럼 보이는 지형은 해가 높아 질 때마다 모양을 달리하며 뒤에 히말라야 산들과 어우러져 또 다른 장관을 연출합니다. 이런 모습은 이곳이 아니고는 볼 수 없다며 안내를 맡은 오영철씨가 자랑하듯 말합니다. 

새벽 한기가 상당한지 일행들은 춥다고 차 안으로 들어갔지만 저는 남아 더 촬영에 몰두했습니다. 한참 뒤 카메라를 내려놓고 나서야 손이 꽁꽁 얼어 움직일 수 없다는 걸 느꼈습니다. 추워서 더 견딜 수 없다며 빨리 출발하자고 난리를 쳐 할 수 없이 주섬주섬 카메라를 챙기고 차에 오르니 일행들이 “그렇게 좋으세요. 무려 1시간 동안 촬영했는데 몇 컷이나 찍으셨나요”라고 묻습니다. 그제야 카메라를 보니 엄청나게 많이 찍기는 했습니다. ‘언제 또 여기를 올 수 있을 것인가’ 하고 생각하니 정신없이 셔터를 눌렀던 것 같습니다. 

어제 올랐던 길을 내려가며 아쉬워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다 보니 산 너머로 지나왔습니다. 어젯밤 설친 잠이 스르르 몰려와 꾸벅꾸벅 하는데 차가 덜컹거리는 바람에 천장에 머리를 부딪쳐 잠을 깼습니다. 차창 밖을 보니 넓은 초원에 수많은 양 떼가 히말라야 설산과 어우러진 풍경이 펼쳐집니다. 차를 세우자 너나없이 카메라를 들고 사진 찍느라 난리입니다. 이제 우리는 카일라스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계속>
<서재철 본사 객원 大기자>

뉴제주일보 기자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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