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을 기억하며…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을 기억하며…
  • 부남철 편집국장
  • 승인 2020.11.18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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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경제 발전은 현대 세계사에서 손꼽을 만하다는 점을 어느 누구도 부인하지 못 한다. 하지만 이런 경제 발전의 과정에서 무수히 쓰러져간 이름 모를 노동자들의 노력은 쉽게 잊히고 있다.

지난 13일 이들 무명(無名)의 노동자를 대표하는 전태일 열사의 50주기가 지났다.

기자가 ‘청년 전태일’을 만난 것은 1980년대 말 대학에 입학하면서이다.

당시 기자가 만난 청년 전태일은 책 속에 있었고 20여 년 전 그의 희생에 분노했다.

1970년 11월 13일 청년 전태일은 ‘근로기준법’ 책을 가슴에 품고 서울 청계천 평화시장 인근 국민은행 앞 길에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치며 산화했다.

당시 서울 청계천 평화시장에 즐비했던 봉제공장의 노동조건은 살인적이었다. 이들 봉제공장에는 햇빛도 들지 않는 사업장에서 하루 15시간 안팎의 노동에 시달리는 10대 노동자가 넘쳐났다. 경제 발전이라는 명목 하에 경공업 중심의 수출경제를 떠받친 어린 여공들이 받아든 일당은 당시 커피 한 잔 값에 해당하는 50원이었다. 

노동자들은 늘 배가 고팠고 잠이 모자랐지만 권위주의 통치 세력과 성장 일변도의 자본주의 논리 앞에 자신들의 권리를 내세울 수도 없었다.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며 청년 전태일이 떠난 지 어느 덧 반세기가 흘렀다.

50주기를 하루 앞둔 지난 12일 정부는 전태일 열사에게 국민훈장 가운데 첫 번째 등급인 무궁화장을 추서했다.

열악한 노동환경 개선과 노동자 권익 보호, 산업 민주화 등 우리나라 노동운동 발전에 기여한 열사의 공이 정부로부터 인정을 받은 것이다.

전태일 재단은 훈장 추서에 대해 “전태일의 삶과 죽음의 의미를 역사와 사회에 분명하게 아로새긴다는 점에서 뜻깊은 일”이라고 평가했다.

전태일 열사가 떠난 지 50년이 된 올해 과연 우리나라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노동조합을 결성하는 일조차 금기시되던 시대는 지나갔고(?) 법정 노동시간이 단축되고 일과 삶의 균형을 추구하는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의 시대가 왔지만 아직도 수많은 노동자에게는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산업재해 사망률 1위이며 노조 조직률은 11.8%로 밑바닥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약 750만명으로 전체 노동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6%나 되며 그들의 평균 임금은 정규직의 55%에 그친다. 

청년 전태일이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준수하라고 외친 근로기준법도 5인 미만 사업장에서는 여전히 지켜지지 않고 있다. 근로기준법에서 적용 예외를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올해 전 세계를 휩쓴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대유행은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위협하고 있다.

코로나19를 핑계로 구조조정, 해고, 휴직, 희망퇴직 등 노동자들이 길거리로 내몰리고 있다.

이스타 항공은 이메일을 통해 약 600여 명의 노동자를 정리해고 했다. 경영진의 배임, 횡령, 불법증여 등에 대한 의혹은 뒤로 한 채 경영 악화의 책임을 노동자가 지고 있다.

코로나 시대 최고의 호황기를 맞고 있는 택배업계에서도 노동자들의 현실은 참담하기 그지없다. 올해 과로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택배노동자는 13명에 이르고 있으며 불공정한 계약의 부당성을 외치는 택배노동자들의 목소리는 점점 높아지고 있다.

이와 함께 원청업체의 계약 해지 우려 등으로 파견, 용역 등 형태의 간접고용노동자들은 단체행동권을 제약받는 것이 현실이다.

제주지역에서도 지금 현재 수많은 노동자가 노동할 권리를 포기하기를 강요받고 있다.

1980년대 서울대 법대 재학 시절 구로공단과 인천공단 등지에서 노동운동을 했던 원희룡 제주특별자치도지사는 지난 13일 열린 ‘2020 오늘의 전태일’ 토론회에서 “보다 약자를 도와주고 함께 가고자 하는 정신이 지금 노동운동과 정책에도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코로나19로 극심한 타격을 입은 지역경제 활성화가 시급한 시점이다. 하지만 그 중심에 노동자가 있어야 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부남철 편집국장 기자  bunch@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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