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 저편에
그리움 저편에
  • 뉴제주일보
  • 승인 2020.11.10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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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태용 수필가

누렇게 익어가는 나뭇잎들이 시나브로 떨어집니다. 문득 꿈인 듯 캘린더를 올려다봅니다. 제 기억 속에서 하얗게 잘려나간 그 날도, 나뭇잎은 오늘처럼 떨어져 내렸고, 당신이 떠난 자리는 창밖 풍경처럼 쓸쓸하고 외롭습니다.

제가 보고 싶으면 살며시 방문을 열고 벽에 걸린 제 사진을 물끄러미 쳐다보시던 어머님. 당신의 그 깊은 응시는 저만의 느낄 수 있는 그리움의 향기입니다. 이제 그 향기마저 희미해져 간다는 것은, 새벽에 홀로 맞는 통증보다 더 아픈, 인생의 덧없음과 세월의 무상함 때문이겠지요.

어둡던 시절의 고난과 시련으로 옥같이 곱던 얼굴, 가난한 주름으로 얼룩지셨던 어머님. 지난한 삶, 애써 서러움 삼키며 긴 한숨만 내쉬곤 하시더니 1년 전 이 즈음, 노년기를 견디지 못 해 떠나신 당신을 생각하면 지금도 터질듯 복받쳐 마음이 저려 옵니다.

어머님께서도 이미 알고 계시겠지요. 나무는 꽃을 버려야 열매를 맺고 강물은 강을 버려야 바다에 이르듯, 주위사람들이 하나 둘 떠나면서 세상이 외로워지는 것 외엔 세월 속을 유영하며 변화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어느 덧 저희도 장년기를 넘어 섰습니다. 유수처럼 흘러가버린 세월. 세상 일이 모두가 뜬구름이거늘 이제야 가슴앓이하며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애틋한 마음을 표현할 님도 그립고, 보일 듯 보이지 않는 마음통하는 좋은 친구가 그리워지는 것은 저희에게도 적막하고 쓸쓸한 황혼이 눈 앞에 있는 것 때문이겠지요. 그래서 이제 비로소 알 것 같습니다. 어머님의 삶의 무게를요.

어떤 이는 황혼의 삶 속에도 뜨거운 열정으로 살 수 있다고 하지만 요즘 세상 사람들의 삶은 지쳐만 있답니다.

밝고 맑은 파란 하늘을 바라보는 사람들마다에 수심이 가득 찬 것은 탐욕으로 더 이상 나아지지 않는 세상사에 대한 걱정 때문일 것입니다.

없어졌다가 동쪽 하늘에서부터 붉게 떠오르는 태양처럼 저희 마음에도 정열의 불꽃을 뜨겁게 태울 수 있는 희망이 하루빨리 찾아와서 사람들이 편안한 숨소리가 온 누리에 들렸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처럼 사람들 가슴마다에 푸른 꿈을 심어주고 희망찬 세상으로 항해할 수 있도록 당신의 품성처럼 잔잔한 뱃길이 빨리 열렸으면 좋겠습니다.

불초사랑으로 평생을 보내신 어머님을 생각하니 하염없이 눈물은 왜 흘러내리는지요. 언제나 시름 잊고 묵묵히 괴로움을 참으시던 어머님. 괴로우면서도 얼굴을 마주할 때마다 웃음을 잃지 않으셨던 어머님. 왠지 어머님의 그 웃음도, 손수 끓어주셨던 된장국의 향기도 새삼 그립습니다.

오늘은 당신이 쉬다간 자리를 말끔히 정리했습니다. 오셔서 편히 쉬다 가소서.

뉴제주일보 기자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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