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언 ‘거념(하다)’
방언 ‘거념(하다)’
  • 뉴제주일보
  • 승인 2020.11.08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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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김공칠 전 제주대 교수

우연히 병원 복도에서의 부인들의 대화 중에서 남을 돌봐주는 ‘거념’이란 말을 방수(傍受)했다.

한자어사전이나 국어사전에는 고념(顧念)이란 한자어가 있어서 ‘돌보아준다, 불쌍하게 여기다, 잘 살펴주다’의 뜻으로 나와 있으나 ‘거념’은 안 보인다.

방언사전에는 ‘거념’이 나오지 않은 것도 있고 어느 것에는 ‘거념ㅎ+아래아다’가 나와 있는데 의미는 한자의 ‘고념’과 비슷하다.

솔직히 말해서 필자는 ‘거념’이란 말을 지금껏 들은 기억이 안 나서 그렇게 인정미가 있는 말을 경험하지 못 한 것이 부끄럽게 여겨졌다. 그래서 이 말의 내력을 한 번 생각해 보기로 했다.

먼저 방언 ‘거념’은 한자어 ‘고념’(顧念)과 관계가 있다고 본다. 이 한 자는 십팔사략(十八史略, 태고로부터 송대까지의 간략한 역사서, 송대 말 원대 초에 저술)에 나오니 오래된 말임에 틀림없다.

顧의 한국음은 ‘고’, 중국음은 ‘gu=ku’이기에 ‘거’와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예전의 중국음이 ‘거’에 가까운 음이었음을 밝힐 수 있으면 관련 지을 가능성은 있다.

顧의 중국중고음은 ku음이었고(상고음은 ka), 만당 때도 송대, 원대에도 ku음이었다.

중세 한국 한자음은 ‘고’(훈몽자회) 음이다. 대개 한국음의 ‘고’는 중국음에는 ku로 반영되기에 당연히 顧의 한자는 ko/ku였다는 것을 추정할 수 있다.

그런데 顧의 용례를 보면 중고음은 模(u)운이고, 만당 이후는 魚模(u)운으로 쓰인 것으로 돼 있다. 송대에 模(모)와 魚(어)가 협운(協韻) 관계이고 顧의 반절도 과오반(果五反)으로, 그리고 그 운도 ‘處’(처)로 사용되고 있다.

여기에 쓰인 ‘魚’(어, 훈몽자회), ‘處’(쳐, 훈몽자회)는 모두 u/o와 가까운 ‘어’ 소리에 해당하는 것이다. 곧 이 말은 顧라는 한자는 본래 ku/ko 음이지만 ‘거’와 같은 소리와도 함께 쓰이기도 했다는 것(時作에서의 協韻)을 말한다.

송대의 이러한 두 쓰임에 따라 한국에서도 두 쓰임이 있게 됐다고 본다.

전래적인 顧의 ko/ku 소리대로 이조어에 ‘고’ 음으로 고정되기도 하고 한편 제주에서는 시류에 따라 그 변이음(협운) 대로 ‘거’ 음으로 받아 ‘거념’으로 방언화해 쓰이기도 했을 것이다.

ko/ku와 ‘거’(kə)는 고려 때의 모음 추이에 의한 변동에도 가장 근거리에 있다. 지금의 일본의 ‘오’(o) 음은 원래 ‘어’(ə 또는 ɚ) 음이었다. 음의 변화로 ‘오’에 가까운 소리가 됐으나 지금도 ‘어’의 들림이 있다.

이상을 정리해 보면 방언 ‘거념’은 의미 상으로 한자어 ‘顧念’(고념)과 부합한다. 이 ‘고념’이란 발음이 일시 ‘거념’과 통용된 적이 있어 제주도에서도 일부에서 ‘거념’으로 사용됐다고 보는 것이다.

이상은 필자의 우견에 불과하고 ‘거념’의 내력이 잘 밝혀졌으면 한다.

뉴제주일보 기자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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