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이 준 선물
아픔이 준 선물
  • 뉴제주일보
  • 승인 2020.11.03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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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숙 제주지방법원 가사상담 위원·경청아동가족상담센터 소장

필자는 근래 제주법원과 양육비 이행관리원에서 의뢰된 이혼 가정의 자녀와 부모 상담을 맡고 있다.

특히 양육비 이행관리원 의뢰 사건은 양육비와 면접교섭이 잘 진행되지 않아 의뢰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혼 후 오랜 시간이 흘러도 이혼 당시 감정들은 마음 한 켠에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혼을 결심해 협의, 재판으로 이혼을 진행하든 이혼 후 세월이 오래 지나 양육비나 면접교섭 문제로 다시 이혼 당시를 회상해 보든 이혼을 경험하는 부모들이 가지는 공통된 마음이 있는데 다음과 같다.

▲자녀에 대한 죄책감=대부분 이혼 부부는 자녀에게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 주지 못 했다는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이혼했어도 자녀에게 말을 못 해 함께 사는 부부도 있다. 그러나 같이 살면서 부부 갈등의 원인을 찾지 못 해 계속 싸우면 자녀의 정서에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집이 불편한 청소년 자녀는 가출하거나 빨리 독립하려고 이른 혼인과 출산을 하기도 한다.

▲경제적 불안감=이혼하면서 재산을 나누고 생활비도 각자 쓰다 보면 경제적 수준이 이혼 전보다 낮아진다. 주양육자는 혼자 벌어서 자녀를 양육할 수 있을지, 부양육자는 양육비를 주고 남은 돈으로 생활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홀로 된다는 것에 대한 불안감=싫든 좋든 함께 살 때는 자녀를 보는 재미로라도 살았지만 이제는 그런 낙이 없어진 부양육자가 심리적으로 매우 위축되기도 한다. 주양육자도 혼자 자녀의 모든 것을 책임지는 게 생각보다 훨씬 벅차다고 한다. 

▲자녀와 영원히 이별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혼하면서 양육권을 확보 못 하면 평생 자녀를 못 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양육권 분쟁이 치열하기도 하다. 

▲이혼 후에도 상대방이 찾아올지 모른다는 불안감=상대방을 보고 싶지 않아 이혼을 선택했는데 상대방이 계속 자기 주위를 배회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자녀를 데리고 숨어버리기도 하고 아예 양육을 포기하고 면접교섭마저 거부하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자녀가 한 쪽 부모와 영원히 이별하는 피해를 본다.

▲주위 사람들의 평가에 대한 불안감=이혼한 사실을 주위 사람이 알까 봐 걱정한다. 그래서 사람들도 만나려 하지지 않고 외톨이가 돼 알코올 중독에 빠지기도 한다. 

▲상대방에 대한 불신=배우자에 대한 신뢰 상실로 이혼을 선택했는데 그 신뢰는 이혼 후에도 회복되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준 양육비를 제대로 쓰고 있냐?”, “면접교섭할 때 아이한테 무슨 짓을 했냐?” 등 예민한 반응을 한다. 이혼했다는 사실을 잊은 채 과거 혼인생활 중 배우자에게 했던 기대를 그대로 유지해 발생한 문제다.

자녀와 함께 살지 않으니 자녀 양육비가 얼마나 들어가는지 모를 수밖에 없는 게 부양육자의 현실이고 자녀와 부양육자의 면접교섭에 동석하지 못 하니 면접교섭 상황을 모르는 게 주양육자의 현실이다. 그럼에도 이를 받아들이지 못 하고 함께 살던 시절처럼 계속 상대방에게 관여하려 시도하는 것이다.

이 같은 마음이 오가는 것에 충분히 공감하면서 근래 법원, 양육비 이행관리원, 전국의 건강가정지원센터 등은 이혼이라는 사건은 여느 가정, 누구에게도 올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며 이 시간을 건강하게 지날 수 있도록 적극 지원을 하고 있다.

조금 용기를 내 그 지원의 시간에 손을 내밀면 부부 간 대화 방법을 체크하고 이혼 과정이나 이혼 후 부부는 헤어졌어도 자녀와는 평생 연결될 수 있는 건강한 방법들을 익힐 수 있다.

이혼 후 자녀를 정기적으로 면접교섭하는 부양육 부모들의 집단 상담시간에 최근 참여한 한 부모는 다음과 같이 소감을 전했다.

“이혼하지 않으려고 애썼고 어쩔 수 없이 이혼을 결심하고 나서도 자녀를 양육하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했는데 결국 상대방이 자녀를 양육하게 됐습니다. 너무 아팠어요. 세상에 내 편은 하나도 없는 것 같았죠. 그런데 법원에서 가사상담을 받으라고 하고 이혼 후에도 양육비 이행관리원, 건강가정지원센터에서 면접교섭도 정기적으로 할 수 있게 도와주고 지치지 말라고 힘내라고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끼리 마음을 나누며 용기와 지혜를 얻어가는 집단 상담 시간도 마련해 주니 이제 조금씩 회복돼 갑니다. 상담선생님이 우리 가족의 지도가 돼 줬어요. 그래서 이제 어디쯤 왔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방향이 잡혀 두려운 마음이 한결 가벼워 졌습니다. 양육비를 주고 면접교섭을 하는 것도 당당하게 부모 역할을 하는 것이란 마음이 비로소 듭니다. 그래서 느낍니다. 아파보니깐 소중한 것들이 무엇이었는지 헤아릴 수 있게 됐어요. 이 깨달음으로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살려구요.”

뉴제주일보 기자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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