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말(馬)을 만나다
제주도 말(馬)을 만나다
  • 뉴제주일보
  • 승인 2020.11.03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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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훈식 시인·조엽문학회 회장

말은 초원에서 풀을 뜯어먹고 산다. 온순하기에 무리지어 다닌다. 제주도 날씨가 맑으면 말 표정도 밝고 바람 거세면 세기만큼 털이 흔들리고 한라산에 비가 쏟아지면 흠뻑 젖는다. 머리와 목 꼬리도 다리도 길다. 의사소통으로 고개를 흔들면서 콧방귀를 뀌거나 앞발을 들거나 이빨을 드러내며 성내기도 하지만 다른 동물을 잡아먹지 않는다. 암수끼리 서로 끌리면 교미하고 새끼 낳고 젖도 먹이고 핥아준다. 사람에게 길들여져 밭갈이도 가고 돌방아를 돌리며 쌀을 찧기도 한다. 경마장에서나 전쟁터에도 나가서도 힘껏 달리지만 잘 충돌하지 않는다.

당근과 채찍의 차이를 체험으로 알고 주인이 부르면 조심스럽게 다가온다. 아주 피곤하거나 몸에 부상을 입거나 독한 풀을 잘못 먹고 현기증을 느낄 때나 해산의 고통이 있을 때 간혹 땅에 눕는다. 초원을 향해 내달리므로 근육미가 넘치고 나름으로 부지런한 성격이기에 빚도 없다. 영역표시도 너그러워 남에게 원한이 없다. 달리는 앞모습이나 서 있는 옆모습이나 걸어가는 뒷모습도 떳떳하기에 아름답다.

워낙에 말을 좋아하다 보나까 조랑말을 꿈에서 보고 시를 쓸 정도다. 내용을 알려드리면 꿈속에서 본 말이지만 정말 초라한데 고삐가 있어 일하는 말로 짐마차를 끄는 형편이가보다. 그런데 그 말이 누가 훔쳐가 버렸으니 얼마나 애통한지 후회가 막심하다. 다리를 저는 볼 품 없는 말이기 때문에 누가 훔쳐갈까 심드렁했으니 잃어버려도 덜 억울할 거라며 말 도둑놈은 선심 쓰듯 생각하겠지만 이 말마저 없으면 무엇을 해 먹고 살란 말인가.

지난해 텔레비전에서 주말의 명화라고 오래간만에 벤허를 재방영했다. 나는 이 영화를 최고로 꼽는다. 감독 월리암 와일러1959년에 제작했는데도 얼마나 스케일이 웅장한지 감동이 넘칠 따름이다. 특히 전차경기에 나오는 말들의 힘찬 레이스가 압권이다. 주인공 찰튼 헤스턴이 모는 네 마리의 백마가 눈길을 붙잡고, 상대역로 나온 스티븐 보이드의 흑마 네 마리도 대단해서 부러웠다. 그래서 쓴 시가 초라한 조랑말이다.

말은 소보다 착하다는 시도 썼다. 옛날에는 겨울 말고는 야산에 소나 말을 방목하면서 키웠는데 주인이 찾으러 가서 부르면 소는 일 시켜먹으러 온 줄 알고 곶자왈 속으로 더 숨는데 말은 어디 있다가도 주인이 반가워서 달려 나오니까 전투장에서 타고 다녔다고.

제주도 중산간에 승마로 둘레 길을 만들고 말을 타고 제주도를 일주하는 것도 관광산업이 될 것이고, 제주도 속담에 올 사람 아니 오면 말 죽은 밭에 갔다라고, 말고기 맛이 기막히다는 은유도 있다.

지난주에 표선면 소재 말 요리식당에서 말고기육회를 얹어서 볶은 궁중비빔밥을 먹었다. 말이 살찌는 계절에 신선한 말고기 요리는 보약이므로 삼동의 건강은 당연하다. 제주도 말 산업이 각광 받을 날이 도래했음을 입맛으로 실감했다.

 

뉴제주일보 기자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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