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자기결정권
성적자기결정권
  • 뉴제주일보
  • 승인 2020.10.2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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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신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위촉 성폭력예방 전문강사

제주에서 자신이 낳은 아이를 20만원에 입양해 주겠다는 내용을 중고거래 사이트에 올린 이야기가 전국의 뉴스를 탔다. 산모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고 뒷말이 무성하다. 모 방송에서는 그 사건을 다루면서 미혼모 정책까지 거론한다. 미혼모 정책이 잘 되면 미혼모가 줄어들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사랑의 결과로 생명을 잉태하는 일은 신비이며 축복이다. 하지만 모든 임산부가 그렇지는 않다. 성폭력에 의해 임신 되었거나 강제로 관계를 했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아이를 낳았어도 키우지 못 할 피치 못 할 이유와 사정도 있게 마련이다. 그 이유와 사정이 어떻든 이번과 같은 일이 일어났다는 게 이 사회의 슬픈 현실이다. 원치 않는 아이를 낳았을 때의 정신적 충격은 혼자 감당하기엔 무리이다. 거센 파도 속에서 소용돌이치는 산모의 심리상태를 미리 다독이지 못 한 사회의 잘못도 있다.

사람은 사회 공동체 안에서 성장하면서 나름의 성적 가치관이 확립된다. 일정 나이가 되면 자신의 의지나 판단으로 책임 있는 성적 행동을 할 수 있는 성적자기결정권이 있다는 것도 안다. 성적자기결정권은 원하는 대상과 성적 행위를 할 수 있음도 뜻하지만, 동시에 상대가 원하지 않는 성적 행위는 사소한 것이라도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자신이 행한 성적 행위의 결과까지도 책임져야 한다는 의미이다.

씨를 뿌리면 거두어들여야 함이 마땅하다. 남녀 사이의 관계도 그렇다. 두 사람이 관계에서 일어난 일은 두 사람이 책임지는 것이 마땅한 일이 아니겠는가.

미혼모뿐만 아니라 여러 형태의 성폭력 사건의 본질은 성차별의 문제에서 시작된다. 양성평등을 부르짖고 있지만, 남녀관계에서의 성 문제는 아직도 남성 중심에서 벗어나지 못 하고 있음을 본다. 성폭력 사건이 일어났을 때 가해자인 남자보다 피해자인 여성에 대한 뒷말이 더 무성한 예가 그렇다. 다른 폭력사건이 나면 가해자를 못된 놈이라 욕하는데, 유독 성폭력 사건은 피해자 탓하기, 가해자 두둔하기 등으로 2차 피해를 주는 경우가 종종 있다.

성폭력예방 전문강사 활동을 하면서 지난 나의 60여 년을 돌아보았는데, 가부장적 문화에서 비롯된 성차별의 문제는 크게 변하지 않고 있음을 느낀다.

거슬러 올라가 보면 우리 할머니의 삶이나 어머니의 삶이 성 역할 면에서 별로 달라진 것 같지는 않다. 내가 아이를 키울 때만 해도 육아와 가사는 당연히 아내의 몫이라 여겼다. 친정 어머니가 육아를 도와줬기에 그나마 어찌어찌 버틸 수 있었다. 슈퍼우먼으로 살 수밖에 없었던 지난날을 생각하면 아찔하다. 잘못된 성 역할 고정관념으로 지금도 육아와 가사는 여성만의 몫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각자의 능력에 맞게 조금씩 상대의 짐을 나누어 가진다는 생각이 중요하다.

뉴제주일보 기자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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