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재래흑돼지의 유래와 활용가치
제주 재래흑돼지의 유래와 활용가치
  • 뉴제주일보
  • 승인 2020.10.1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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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철 제주도 축산진흥원

제주 재래흑돼지는 일반 돼지보다 체구가 작고 몸 전체가 검은 색 털로 덮여 있으며 코가 곧고 좁으면서 앞으로 길게 나온 것이 특징이다. 오랜 세월 제주 기후와 풍토에 잘 적응해 체질과 질병에 대한 저항성이 강한 품종으로 알려졌다. 

제주 재래흑돼지는 확실한 고증은 없으나 고구려 시대에 돼지가 우마(牛馬)와 함께 북방으로부터 유입돼 남하한 것이 시초로 추정되고 있다. 

이른 바 ‘똥돼지’라고 불리는 제주 재래흑돼지는 예로부터 돌담을 둘러 터를 잡은 변소인 통시 또는 돗통에서 사육됐다. 이 돼지는 각종 배설물과 음식 찌꺼기를 처리하고 농사에 필요한 퇴비를 생산하면서 돼지고기 생산까지 이어지는 다양한 역할을 했다.

제주의 통시에서 돼지가 섭취할 수 있었던 것을 토대로 현대의 영양학적 측면으로 볼 때 보릿겨, 조겨 등 강피류에 부족한 필수 아미노산의 결핍 및 칼슘보다 인 함량이 높아 정상적인 성장을 하지 못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에 반해 멧돼지는 산에서 다양하게 음식물을 섭취할 수 있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비대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제주에서는 돼지를 도새기, 도야지, 돗 등으로 불렀는데 젖 뗀 새끼돼지를 자릿도새기라 했다. 두 마리를 보통 ‘ㅎ+아래아+ㄴ자리’라고 해 새끼돼지 거래단위로 이용됐다. 아마도 새끼돼지를 사다 키울 때는 한 마리보다는 보통 두 마리를 사다 키웠기 때문에 그런 단위가 생겼을 것으로 추정된다. 젖 뗀 자릿도새기는 마을이나 장에서 필요한 사람에게 팔았다. 

과거에 제주도에서는 돼지고기가 혼례, 상례, 제사와 같은 집안이나 마을 행사에 중요한 음식 재료 중 하나였다. 명절이 다가오면 마을 사람들이 모여 돼지를 잡아 나눠 먹었고 이를 통해 제주만의 독특한 음식 문화가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특히 돗수애(돼지 순대), 돔베고기(돼지 수육), 몸국, 돗새끼회, 고기 국수 등에서 보듯이 제주 재래흑돼지는 제주 향토문화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제주지역에서는 삼국지 위지동이전, 해동역사, 탐라지 초본 등의 고문헌을 통해 흑돼지를 사육했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어 제주 재래흑돼지가 제주 전통 가축임을 알 수 있다. 

일제강점기 때부터 재래돼지의 능력 개량을 목적으로 외국에서 개량종이 도입되기 시작했고 비위생적이라는 이유로 화장실 개량 사업이 추진되면서 순수 재래돼지의 개체 수가 급격히 줄어들어 멸종 위기에 처하게 됐다. 

재래종에 대한 관심과 유전자원에 대한 인식이 고조되면서 도 축산진흥원에서는 1986년에 재래흑돼지 5마리(암컷 4, 수컷 1)를 확보해 순수 계통번식을 통한 보존사업을 추진했다. 

육지 재래돼지와 비교해 보면 차별된 혈통의 고유성을 유지하고 있으며 그 고유성과 역사성을 인정받아 국가 차원의 종(種) 보존을 위해 제주 재래흑돼지 250마리가 2015년 3월 천연기념물 제550호로 지정돼 도 축산진흥원에서 관리하고 있다. 

재래흑돼지는 2008년부터 ㈔한국종축개량협회에 품종 등록했으며 2012년에는 유엔 산하 식량농업기구(FAO)에 한국 돼지 중 ‘제주 재래돼지’ 단일 품종으로 등재됐다. 이로 인해 가축 유전자원 보유국의 국가 주권화 논쟁에 대비한 권리 주장의 근거를 마련해 뒀다.

최근 아프리카돼지열병(ASF), 구제역(FMD)과 같은 악성 가축 질병으로부터 지역 고유 유전자원을 지키는 일이 점차 중요해지고 있다. 돼지는 해부학적으로 사람의 장기 구조와 유사하고 피부 적합도가 잘 맞기 때문에 의료용으로 활용한다면 상업적 가치가 클 것으로 보인다.

제주 흑돼지의 상품가치는 스페인 이베리코, 헝가리 망갈리차, 일본 가고시마 흑돼지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다른 품종과 비교해도 유전적 고유성과 고기 맛 등에서 결코 뒤지지 않는다. 

우리 민족과 오랜 시간 함께 해 온 제주 재래흑돼지 유전자원의 안정적인 보존은 천연기념물을 후손들에게 전하는 것뿐만 아니라 이를 활용한 고부가가치 산업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제주 재래흑돼지 유전자원의 안정적인 보존과 다양한 분야에서의 활용으로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뉴제주일보 기자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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