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면회
마지막 면회
  • 뉴제주일보
  • 승인 2020.09.22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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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선 수필가

C장관 아들의 군대문제로 시끄럽다.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는 넘어야할 산이다.

오래전 일이다. 큰아들은 대학을 다니다가 갑자기 군 입대를 했다. 논산훈련소 입소하는 과정도 부모의 동행을 거부했다. 탈영하지 않고 무사히 입소하겠다는 농담을 하면서 말이다. 부대 입구라고 전화 올 때는 안부만 전하며 태연한 척 했다.

1차 훈련을 마치고 2차 교육 중에 부모 면회 일정이 있었다. 그 당시로서는 군생활의 모습을 일요일 단 하루의 면회를 허락하는 부대의 의무도 있다. 때에 따라 중대장으로부터 걱정 말라는 서신도 보내왔다.

손 편지가 흔한 시절이라 아들의 소식도 종종 읽었다. 의무병 교육을 받을 때여서 강의실에서 환자 처치과정과 약 처방 교육을 임하는데 밖에선 훈련병들이 총검술 한다는 글도 곁들였다.

지정된 면회일자가 돌아오자 고향 제주에서는 대식구가 출발했다. 병환 중이었던 시아버지도 걸을 수 있을 때 장손 면회 가기를 원했다.

본가에서는 유일한 현역병이어서 자랑스러웠다. 작은아들까지 동행해 4명은 광주행 비행기를 탑승했다.

훈련병 면회는 한 끼 식사를 부모와 같이 부대 내에서 한다는 취지였다. 제주에서 논산훈련소까지는 전날 아침 비행기를 타야 유성지구에 도착한다. 유성은 논산입구로 주말이 되면 면회자 숙박으로 주중보다 몇 갑절이나 비쌌다. 일요일에 사병식당 장소만 빌려주고 외출은 금지였다.

아들을 위한 반찬은 구이용 쇠고기양념과 커다란 생선 한 마리 구워서 별도의 가방에 챙겼다. 택배도 되지 않으니 낑낑대며 밀감 두 박스 가져간 일이 힘들었다. 소대원들과 나누어 먹게 했다. 9시가 돼 정문이 열리자 훈련병 찾느라고 분주하다.

가족을 찾으면 자연스레 사병식당으로 들어갔다. 아들도 쉽게 다가왔다. 식당은 장교식당 칸까지 제공돼 많은 인원을 수용했다. 가져간 음식을 내놓고 맛있게 먹는 아들만 바라봐도 흐뭇할 정도였다.

아들은 잠시 수저를 놓더니 방에 갔다 온다 했다.

돌아온 아들은 같은 소대원 한 명을 데리고 왔다. 나주에 사는 동기생인데 조부상으로 부모가 면회를 못 왔다는 설명이다. 아들이 데려오지 않았으면 그 사병은 굶을 뻔했다. 내 자식처럼 맛있게 먹으라고 배려해 주었다.

그 후 아들은 경기도 연천으로 부대배치를 받았다. 커다란 생선토막을 생각하면 먼 곳이니 면회 오지 말라고 했다.

제대하기 전에 꼭 한 번 연천을 가고 싶었는데 소망으로 끝났다. 마지막 면회가 된 셈이다.

지금은 훈련소 면회가 원거리에서 큰 비용 든다고 사라져서 다행이다.

뉴제주일보 기자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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