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위 나이팅게일’ 아프리카서 선한 영향력 펼치다
‘말라위 나이팅게일’ 아프리카서 선한 영향력 펼치다
  • 변경혜 기자
  • 승인 2020.09.20 18: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5] 백영심 간호사

30년간 아프리카 최빈국서 의료봉사
ICT대학 설립 등 청년 교육에도 열정
성천상 상금으로 중·고교 설립도 준비
“필요로 하는 사람들 곁에 있는 것 꿈”
호암재단에서 찍어준 스튜디오 사진.
호암재단에서 찍어준 스튜디오 사진.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30년간 묵묵히 아프리카 최빈국에서 의료봉사활동을 실천해 온 백영심 간호사(57)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JW그룹의 공익재단인 중외학술복지재단이 주최해 올해 8회째를 맞고 있는 성천상을 수상한 백 간호사는 한사코 인터뷰를 주저하다 얼마 전 김포공항에서 만난 그는 코로나19 상황이 하루빨리 마무리돼 아프리카에서 자신의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 삶이고사명이었던선교사역할

언론에 나서서 얘기할 게 별로 없어요. 그저 제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지요. 코로나19로 헌신하는 많은 간호사들에게 주는 상을 제가 대신 받았다고 생각해요. 누가 아팠을 때, 옆에 있어주면 든든하잖아요. 그저 옆에서 함께 손 잡아주는 작은 제 역할을 해온 거죠.”

지난 7월 성천상 수상자로 발표된 후 국내 언론들의 집중적인 보도가 이어졌다. 28살이던 1990년 의료선교를 결심하고 아프리카 케냐로 떠난 뒤 의료봉사활동을 이어가다 1994년엔 이보다 더 열악한 아프리카 최빈국 말라위에서 병원을 일궈내며 환자들을 돌봐온 그다. ‘말라위 나이팅게일로 불리는 그의 이야기는 장기간 이어지고 있는 코로나19로 몸도 마음도 지쳐가는 이들에게 위안이 되고 있다.

가장 먼저 던진 한두 해도 아니고 30년을 아프리카 오지에서 어떻게 버텨내느냐는 말에 제주여자잖아요, 제주여자가 강하잖아요라며 웃으며 말했다.

그리곤 이내 선교사로 갔으니까, 제 삶이고 사명이지요라며 아이들 눈망울을 보면 희망이 보여요. 물론 힘들고 복잡한 생각들도 들곤 하지만 그때마다 아이들 마음이 느껴지지요. 곧 죽을 것만 같은 환자들이 건강해져 병원문을 나서는 모습도 큰 힘이지요라고 말했다.

말라위 마을 환자 진료 모습.
말라위 마을 환자 진료 모습.

▪ 운명처럼 떠난아프리카행

20, 간호대학(현재 제주한라대)에 진학한 뒤 폭풍처럼 밀려들었던 고민은 한국대학생선교회(CCC)의 여름 봉사활동으로 찾았던 여수 애향원에서 변화를 맞았다고 했다.

얼굴과 손발이 다 문드러진 나환자들이 하루를 살아도 행복하게 웃는 모습을 보면서 왜 간호사가 됐는가’ ‘왜 사는가같은 질문에 대해 이유를 찾았다고 할까요.”

그렇게 간호사의 길을 접어든 그는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6년간 일을 하다 아프리카행을 결심했다. “아프리카 케냐에 간호사가 필요하다는 소식에 지원했어요. 국내든 해외든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언제든 떠난다는 생각을 하고 준비를 하고 있었으니까요.”

1990, 당시만 해도 아프리카는 낯설기만 했다. 김포공항에서 가족과 생이별을 하며 부모님을 뒤로 했던 모습이 생생하다.

부모님이 공항에서 한참을 우셨고 어머니는 주저앉아 버리셨어요. 마음이 아팠지만 제가 가야 할 길이었으니까.”

간호대 학생들 모습.
간호대 학생들 모습.

▪ 말라위시스터병원을일구다

아프리카 케냐에서 의료봉사활동을 하던 그는 4년 뒤 더 열악한 말라위로 떠났다. 이동식 진료차량에 몸을 실었고 차량진입이 어려운 곳은 걸어서 환자들을 만났다. 흙먼지만 자욱한 곳에 주민들과 맨손으로 벽돌을 빚어 진료소를 일궈냈다. 늘 부족한 의료시설의 한계를 직면하던 중 얼굴도 모르는 한국 해운회사 기업인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도움을 주고 싶다며 뭐가 필요한가라고 묻자 그는 주저없이 병원이라고 대답했다고 말했다. 전화를 건 이는 해운회사 대양상선 정유근 회장(75)이었다. 2008년 말라위 수도 릴롱궤에 180병상 규모의 대양누가병원이 그렇게 설립됐다. 지금은 200병상까지 확보한 병원 구석구석에는 그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었다. 그가 병원 건립을 위해 설계도면을 고쳐가며 밤을 지 샌 결과물이기도 했다.

건축에 대해 전혀 몰랐던 상태였죠. 병원 설계도면을 봤는데, 현지에 맞지 않는 게 너무 많았어요. 병원은 환기가 중요한데 창문의 방향부터 크기, 바람방향, 일조량, 층고, 병상의 배치 등 모든 걸 세세하게 따져봐야 하거든요.”

오랜 시간 말라위 사람들과 함께 가족으로 이웃으로 생활해온 시스터(sister) 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한 해 20만명 이상을 치료하는 병원 해피바이러스는 더 넓게 퍼져나갔다. “현지에서 병원장으로 일했던 동료가 말라위 북부에 병원을 세웠어요. ‘시스터 백도 하는데 시스터 백 한테 배웠다, 못 할게 뭐 있느냐고 하더군요.”

2010년엔 간호대학과 정보통신기술대학 설립에 나서는 등 말라위 청년들에게 교육과 새로운 삶의 기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에도 힘쓰고 있다.

병원 로비에서 병원 로비에서 찍은 사진.
병원 로비에서 찍은 사진.

▪ 번의인생,환자곁에서최선을

아프리카에서 헌신적 삶을 살아온 그는 현재 코로나19로 고향 제주에 머무르고 있다.

이번 수상소식에 제주친구들의 응원도 이어졌다고 전했다.

제가 제주간호대학 13회라는 걸 이번에 새삼 느꼈어요. 축하메시지도 있었고 제주출신 여성 간호사들이 곳곳에서 역할을 한다는 소식도 들었어요. 어디서든 늘 당차게 일하는 제주여성들의 이야기는 큰 힘이 됩니다.”

귀국길이 열리면 다시 아프리카로 돌아가기 위한 준비도 하고 있다고 했다. ·고등학교 설립을 준비 중인 그는 이번 성천상 상금 1억원도 모두 거기에 보탤 예정이다. 2회 이태석상 상금은 현지 간호대학의 구급차와 학교버스 구입에, 호암상 상금은 도서관을 건립하는데 써온 터였다.

앞으로 계획을 묻자 그는 환자 곁에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제 꿈은 말라위 상황이 나아져서 주변에 더 필요한 곳이 있다면 다시 떠날 수 있기를 바라는 거예요. 말라위 수도 릴롱궤만 해도 국제구호단체도 있고 값비싼 시설도 들어와 있지만 조금만 벗어나면 열악합니다. 18세기를 보는 듯해요. 돌멩이 3개를 모아 냄비를 올려놓은 모습이 흔하니까요. 단 한 번의 인생, 그들과 함께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

마을에서 만난 천진난만한 아이들 모습.
마을에서 만난 천진난만한 아이들 모습.

백영심 간호사는…

말라위 나이팅게일로 불리는 백영심 간호사는 조천읍 함덕리에서 태어났다. 제주여고와 간호전문대(현 한라대)를 졸업, 고려대병원에서 내과 간호사로 일하다 1990년 아프리카 케냐로 의료봉사활동을 떠났다. 4년 뒤 더 열악한 말라위에서 30년간 의료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그의 헌신적 삶이 알려져 2012년 외교통상부가 제정한 이태석상을 수상했고 2013년엔 국제적십자위원회에서 주는 간호사 최고 영예인 나이팅게일 메달, 2015년에는 호암상 사회봉사상을 수상했다. 2010년 대양간호대학을 세울 무렵 갑상선암을 진단받았으나 수술을 받고 극복해내며 다시 아프리카로 돌아가 의료와 교육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변경혜 기자  bkh@jejuilbo.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