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는 자, 듣는 자
말하는 자, 듣는 자
  • 뉴제주일보
  • 승인 2020.09.15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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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가영 수필가

나이가 많은 왕은 자신의 세 딸에게 통치권과 영토를 나눠주기로 한다. 딸들을 불러 자신을 향한 애정을 묻는다. 첫째와 둘째 딸은 아버지만을 사랑한다고 한다. 그 말에 흡족한 왕은 두 딸에게 영토를 준다. 셋째는 달랐다. 자식 된 도리로 아버지를 사랑하고 존경하지만 언니들처럼은 아니라고 한다.

화가 난 왕은 ‘네가 말한 그 진실만이 너의 것이다’며 쫓아내 버린다.

결국 아부 잘하는 두 딸에게는 모든 것을 상속해 줬지만, 그들은 아버지를 돌보지 않는다. 늙고 아프고 병들고 두 딸의 배신에 분노한 왕은 미치광이가 되어간다.

그런 아버지를 돌본 것은 정직한 말을 한 탓에 재산 한 푼 못 받고 쫓겨난 막내딸이다.

왕은 미치광이가 돼 배신한 딸과 모두에게 부르짖는다.

“내가 폭삭 늙었다는 것을 인정해라. 노인은 쓸모가 없구나. 무릎 끓고 이렇게 부탁하니 입을 옷가지와 먹을 음식과 덮을 이불을 좀 다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의 하나인 리어왕의 대사이다.

리어왕의 죄는 왕국을 분리 시켜서 질서를 파괴하고 사악한 두 딸의 달콤한 말에 속아 죄 없는 딸을 쫓아낸데 있다. 그 죄의 결과로 딸들에게 배신당하고 고통을 받는다.

‘리어왕’을 다른 시각으로 해석한 작품이 있다.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란’이라는 영화다. 적을 처절하게 제압해 정상의 자리까지 오른 자. 그 업보로 가문이 멸망하는 인과응보의 과정이 스크린에 펼쳐진다.

노쇠한 성주에게 세 아들이 있었다. 성을 각 각 물려주며 서로 힘을 합칠 것을 당부한다. 셋째아들은 형제의 우의를 믿지 말라고 아버지에게 바른 소리를 하다 쫓겨난다.

끝내는 성주가 된 첫째와 둘째는 자신들의 야망 때문에 늙은 아버지를 쫓아내고 만다. 형제들 싸움으로 아버지도 죽고 가문은 멸족된다.

바른 소리를 한다며 미워했던 셋째아들과 자식들에게 처절하게 버려진 성주를 보며 광대는 울부짖는다.

“신은 있는가? 보고만 있으면서 하늘에서 즐거운가?” 하고.

하늘을 향해 울부짖는 광대에게 옆에 있던 한 장수가 말한다.

“신을 욕되게 하지마라. 울고 있는 건 신이다. 서로 헐뜯고 죽고 죽이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이 인간의 반복되는 악행을 신도 어찌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이것이 인간의 세상이다”라고.

요즘은 너무 어지럽다.

세상은 병원이고, 인간은 환자다.

듣고 싶은 말만 들으려는 지도자는 아첨에 쉽게 넘어가 모든 걸 잃게 된다. 그러나 서로 상대의 말은 거짓이요, 내 말은 진실이라고 한다.

뉴제주일보 기자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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