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파선’ 특별자치도...가라앉게 놔둘 수 없다
‘난파선’ 특별자치도...가라앉게 놔둘 수 없다
  • 김태형 선임기자
  • 승인 2020.09.09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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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패만 덩그러니 남겨진 제주특별자치도는 과연 여전히 유효한가? 최근 불거진 자치경찰제 폐지 논란도 그렇고, 그동안 정부의 핵심 지방분권 정책으로 추진돼온 과정들을 찬찬히 뜯어보면 참으로 어이없고 씁쓸함만 커진다.

시나브로 취지와 방향성을 잃은 채 초라해져버린 특별자치도의 위상을 여실하게 체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효율적인 제도 운영은 빛을 바래고 영향력과 관심도까지 추락, 사실상 ‘장밋빛 청사진’으로 전락한 현실에서 느끼는 감정은 ‘암울함’ 그 자체다.

근본적인 원인 진단은 의외로 간단하다. 출범 이후 반복된 정권 교체라는 울타리 속에서 중앙·지방 정부의 의지·역량 부족 등이 드러나 제자리만 맴돌며 겉돌고 있다. 도내에서 “특별한 게 없다”거나 “실험용”이라는 냉소적 반응이 많아지고, 심지어 “반납하자”는 초강경 분노까지 표출되는 이유다.

특별자치도에 대한 제주도민들의 실망감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 수밖에 없다. 시간을 특별자치도가 출범한 2006년 7월로 되돌려 보자. 당시 고(故) 노무현 대통령의 지방분권 핵심 정책으로 돛을 올린 제주특별자치도 선포는 벅찬 꿈이었다. 중앙과 해외 언론에서도 집중 조명되면서 기대감으로 차고 넘쳤다.

‘연방제 수준의 고도 자치권 보장’이라는 상징적 선언은 화려했다. 이는 1991년 지방자치제 부활 이후에도 견고한 중앙집권적 틀을 깨뜨릴 우리나라 정치·행정 역사상 대변혁의 출발점으로 조명됐다. 여기에 제주국제자유도시의 업그레이드 버전인 ‘홍가포르(홍콩+싱가포르) 프로젝트’까지 발표되면서 기대감은 더욱 고조됐다.

이후 14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제주는 외형적인 고도 성장세를 이뤄냈지만 후유증도 컸다. 제주의 최우선 가치인 생태 자연환경 훼손은 물론 쓰레기 처리난, 자산 양극화 심화, 사회적 갈등 악화 및 수눌음 공동체 붕괴 등 말 그대로 성장통은 제주에 또 다른 최악의 위기를 초래했다.

이처럼 제주의 급변기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고 얽히고설킨 변수 또한 수두룩하다. 이런 현실에서 특별자치도의 득실을 따지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분명한 건 이제 특별자치도는 더 이상 지속가능한 미래와는 거리가 먼, 그저 ‘사탕발림’일 뿐이다. ‘고도의 자치권’은 실현 불가능한 ‘이상’이며, 홍가포르도 제주 토양에 맞지 않는 ‘허상’에 불과하다.

필자는 2005년 특별자치도 밑그림 로드맵인 ‘제주특별자치도 기본계획안’ 수립 이전부터 15년간 추진 과정들을 취재·보도하고 토론해왔다. 개인적으로 현재 특별자치도를 평가한다면 ‘선장·선원도 없이 망망대해에서 가라앉고 있는 난파선’과 다를 바 없다.

한번 곱씹어보자. ‘고도 자치권’은 노무현 전 대통령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을 거쳐 문재인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여야 대선 후보와 당선자들이 내걸었던 공약이었다. 그런데 현실은 최우선 재정분권 특례인 ‘국세 이양’조차 10년 넘게 ‘부처 이기주의’에 막혀 없던 일로 되고 있다.

대통령의 ‘국방·외교 부문을 제외한 파격적인 연방제 수준’ 선언도 외면당했다. 정부 부처는 제주도에서 요청한 ‘법인세 인하’와 ‘도 전역 면세화’, ‘항공 자유화’ 등 이른바 ‘빅3 특례’는 차치하고 ‘포괄적인 권한 이양’조차 거부했다. 결국 알맹이 없는 중앙 권한 이양에 운영비만 떠안았고, 급기야 정부에서 먼저 시범 추진한 ‘자치경찰제’ 폐지 위기까지 내몰리는 처지에 놓였다.

더욱 암울한 건 불투명한 미래다. 기획재정부 등 중앙부처의 기득권 유지를 위한 이기주의는 여전히 ‘철옹성’이기 때문이다. 부처에서 내건 ‘지역 형평성’ 명분은 어불성설이다. 특별자치도의 국세 이양은 외면하면서 지역사회에서 원치도 않는 ‘대기업 면세점’은 허용하는 행태는 이중적이면서 모순이다. 이에 대한 비판도 당연지사다.

‘지역 내 역량 부족’에 대한 우려는 공직사회에서 풀어야 할 몫이다. 어쩌면 ‘대규모 승진’이라는 특별자치도의 최대 수혜자인 공무원들에게 주어진 책무이자 사명이 도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특별자치도 운영체제를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가장 안타까운 점은 노무현 정신 계승을 표방해온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기대감마저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문재인정부는 출범 직후 ‘제주특별자치도 분권모델 완성’이라는 야심찬 청사진을 제시했지만 성과는 미진하다. 더 늦지 않게 정책 방향을 재정비해 다시 ‘선장’으로 나서길 바랄 뿐이다.

분명한 건 특별자치도는 제주의 지속가능한 미래 실현을 위한 필요충분 요소다. 문재인정부와 제주도정, 지역사회 등이 더 이상 특별자치도호를 가라앉게 놔두지 말아야 할 이유도 여기에 있다.

김태형 선임기자  kimth@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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