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가파도에서
섬, 가파도에서
  • 뉴제주일보
  • 승인 2020.09.08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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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태용 수필가

칠흑 같은 어둠이 깔린 여름밤, 고즈넉한 가파섬 창랑(滄浪)에 홀로 앉았다. 출렁이는 파도와 함께 살랑이며 불어오는 바닷바람이 지친 심신(心身)을 씻어 내린다.

멀리 보이는 제주 본섬의 불빛과 고깃배에서 비춰진 불빛, 곧 쏟아질 것만 같은 초롱초롱한 별빛, 그리고 내게서 던져진 낚시찌의 빛 외엔 아무 것도 보이질 않는 가파섬, 한마디로 적막함이다. 고깃배에서 비춰진 불빛은 아름다워 보이지만 그 속엔 시름이 있다. 어부들의 고달픔과 수고함이 아른거린다.

이곳에서 낚시를 드리운 것은 나 자신의 투자다. 삶의 고뇌를 토해내며 설렘으로 마음의 위안을 삼고, 안정을 찾는 여유로움이 그것이다. 이곳에선 우주가 내 것인 듯 가난과 부자가 따로 없다.

새벽이 가까워지자 입질이 시작되었다. 찌의 불빛이 물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낚싯대를 채고는 릴을 감았다. 바로 앞까지 당겼지만 들어올리기가 힘들다. 묵직한 큰놈이 찾아온 모양이다. 몇 분 동안을 고기와 씨름하며 힘겹게 올렸다. 콩닥거리는 마음을 추스르고는 머리에 낀 랜턴을 고기를 향해 비췄다. 이게 어찌된 일인가. 벵어돔이라 생각했는데 최고급 횟감으로 알려진 벤자리 아닌가. 긴 방추형의 노란색에 가까운 은색비늘이 참으로 아름답다. 여름한철 낚시꾼들에게 존재감을 과시하는 인기가 높은 어종이다. 30㎝는 될 것 같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다시 낚시를 드리우자마자 이번엔 20~30㎝쯤 되는 볼락이다. 비늘이 황갈색을 띠었다. 주둥이도 크지만 큰 눈이 특징이다. 일본인들에게 인기가 높다는 어종이다.

섬이어서 그런지 어종도 다양하다. 고등어 새끼인 고도리는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다. 벤자리 다섯 마리를 비롯해 볼락 열 마리 쯤 낚이자 어느덧 동쪽 수평선에서 해가 떠오른다.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사이 밤을 새운 것이다.

고기 낚일 때의 손맛, 그 스릴을 생각하면 낚시꾼들의 일상이 이해가 될 것 같다. 쏠쏠한 재미와 함께 바다자연의 진솔함과의 대화, 그 속에서 마음을 달래고 안정을 찾는 것은 삶을 건강하게 해주는 버팀목이다.

모슬포항에서 배로 10~15분쯤 지점인 가파도. 우리나라 최남단 마라도와 제주도 본섬 중간에 있다. 제주도의 부속 도서 중 네 번째로 큰 섬이다. 구릉(丘陵)이나 단애(斷崖)가 없는 평탄한 섬으로 전체적 모양은 바닷물고기인 가오리를 닮았다. 조선 중기까지만 해도 무인도로 버려진 곳이었으나 국유 목장의 설치를 계기로 마을이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현재는 400여 명이 오순도순 농사를 하며 살고 있다.

이곳의 봄은 청보리축제 기간이다. 살랑거리는 보리물결은 많은 관광객들을 모은다. 하룻밤을 새며 마음을 죌 정도로 아슬아슬한 손맛의 느낌은 영원히 잊을 수가 없을 것 같다. 아! 그 섬, 또 가고 싶다.

뉴제주일보 기자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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