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로 여행을 떠나는 이유
과거로 여행을 떠나는 이유
  •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 승인 2020.09.06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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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영주 주필·부사장

불황 탓일까. 먹거리 가게 주인이나 종업원들의 얼굴빛이 누렇다.

하지만 제주시 서사로 남초등학교 근처. 옛날 통닭집과 옛날 경양식 돈가스집. 촌스러운 이름을 내건 이 두 가게는 예상외로 잘 나간다. 가게 형색은 허름하지만 손님들이 줄을 이어 포장을 해가거나 먹고 간다.

이런 ‘옛날~’을 ‘레트로’, 이른 바 복고(復古)라고 하더니 이제는 ‘뉴트로’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시사사전을 보니 뉴트로는 ‘새로움(New)과 복고(Retro)를 합친 신조어로 ‘복고(Retro)를 새롭게(New) 즐기는 경향을 말한다’라고 해석했다.

‘레트로’가 50~60대 중장년들이 이미 경험했던 과거에 대한 향수가 기반이라면 ‘뉴트로’는 과거의 시대를 한 번도 살아보지 않았던 20~30대가 과거의 콘텐츠를 새롭게 재해석한다는 데 그 차이를 둔다. 말 그대로 레트로가 복고 1세대라면 뉴트로는 복고 2세대인 셈이다. 

▲사실 TV와 라디오에서는 흘러간 옛날 트로트 가요들이 기세다.

복고가 영향을 미치고 있는 분야는 상당히 다양하다. 할머니 집에서 본 듯한 유리컵과 같은 다양한 소품부터 패션, 심지어 전자기기까지. 

뿐이랴. 특유의 잡음이 매력적인 LP 음악을 듣기 위해 라이브카페를 자주 찾는다. 영화도 최신작보다 고전을 즐겨보고 때때로 옛날 다방을 찾기도 한다. 

제주대학교에서 정년퇴임한 J교수처럼 주말에는 필름카메라 동호회 회원들과 출사에 나선다. 

사각거리는 연필의 매력에 빠져 문학작품을 손으로 베껴 쓰는 필사족도 늘고 있다. 필사는 작가 지망생들의 문장 수련 방법이었지만 최근 힐링에 좋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일반인의 관심이 커졌다. 손글씨는 키보드 자판에서 느낄 수 없는 매력이 있다. 연필 손글씨는 물론 잉크 만년필로 쓴 편지도 유행이다. 

▲복고 유행은 사회적 스트레스 지수가 높을 때, 경제적으로는 불황기에 등장한다는 것이 정설이다.

복권 ‘대박’ 외에 기댈 곳 없는 지금 우리 사회의 복고 열풍이 ‘복고의 정설’을 증명하고 있다. 

흔히 복고를 찾는 이유로 위안을 꼽는다. 따뜻하고 즐거웠던 추억을 꺼내 보며 위로받고 싶은 마음은 힘든 상황에 놓였을 때 더욱 강해진다. 

복고는 추억을 소비하는 과정에서 위로받는다는 측면에서 노스탤지어와 상당히 닮아있다. 17세기 의학자 요하네스 호퍼가 고향을 떠난 스위스 용병의 병을 표현하고자 창안한 이 용어는 원래 시간이 아니라 공간을 통해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가리켰다. 

하지만 이제 노스탤지어는 떠나온 모국이나 고향을 절박하게 그리는 마음이 아니라 사람의 일생에서 잃어버린 평온했던 시절을 애타게 동경하는 마음으로 표현된다.

▲오늘 이 사회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 한 세상이다.

이 스트레스, 이 불황에 지친 사람들은 아날로그 향기가 물씬 풍기는 ‘옛날’에 풍덩 빠져있다.

7080 열풍에 이은 8090 열풍이다. 

사회비평가들은 이 열풍을 “과거 고도 성장기에는 청년실업, 비정규직, 전세난 등의 어려움이 상대적으로 덜했다고 생각해 마음을 포근하게 적셔주는 과거로 돌아가려는 것”이라고 분석한다. 

캐나다 철학자 앤드루 포터는 사회비평 ‘진정성이라는 거짓말’(The Authenticity Hoax, 노시내 역, 마티)에서 복고와 향수를 진정성 추구로 해석한다. ‘복고 열풍’의 또 다른 분석이다. 

살기는 힘든 데 거짓말만 판치는 세상. 그래도 진정성을 추구하는 타는 목마름이 있다.

그 목마름에 우리는 경양식집 돈가스를 시켜 옛 추억에 잠기고 기름에 튀긴 옛날 통닭 한 마리를 사들고 집에 가면서 과거로 ‘추억 앓이’ 여행을 떠난다.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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