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성이다
서성이다
  • 뉴제주일보
  • 승인 2020.09.01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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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숙 제주지방법원 가사상담 위원·경청아동가족상담센터 소장

법원에서 의뢰되는 상담 중에는 아무리 경력이 오래됐어도 시작도, 진행도, 결론을 맺는 것도 어려운 경우가 늘 있다.

이런 마음이 계속 쌓이면 평소 잠깐 걷는 시간을 더 내어 제주의 이곳저곳을 서성이며 오래 걷는다. 특히 가족 내 물리적 폭력으로 인한 자녀학대로 상담이 의뢰되거나 부모 혹은 자녀의 자살 징후가 보일 때는 더 그렇다.   

이번 회에는 가정폭력 중 아동학대에 관한 다소 무거운 이야기를 해 볼까 한다.

아동학대의 원인은 다양하지만 대부분 부모와 자녀의 정서 불안에서 비롯된다.

특히 아이가 자기의 통제에 따르지 않을 때 타이르기보다는 습관적으로 주먹이 먼저 나가는 부모가 있다. 심지어 다른 사람들이 보고 있는 길거리에서 소리 지르며 아이를 때리기도 하고 집에서 내쫓기도 한다.

아이가 받을 정신적 충격은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분노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는 것이다. 

왜 부모는 항상 자신들이 옳다고 생각하는지, 아이는 부모 뜻대로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이해하기 힘든 때가 참 많다.  

아이와 부모를 만나보면 자녀보다 부모 문제가 심각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부모 간 갈등이 심해 매일 싸움이 일어나면 자녀는 지나치게 예민해져 투정부리거나 우는 증상이 심해지기도 한다.

특히 부모가 이혼할 때 이를 받아들이지 못해 방황하는 아이는 불안과 분노감이 많아 부모에게 적대감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쌍방 폭행이 발생하기도 한다. 

또 이혼 후 주 양육자가 홀로 양육비를 감당하느라 지치고 양육도 서툴러 아이를 힘으로 제압하려 할 때 아동학대가 발생하기도 한다. 자녀는 나름대로 부모에게 적응하려고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 보지만 그것이 오히려 부모를 화나게 하기도 한다. 학계에서는 아동의 이런 행동이 아동학대의 위험성을 높인다고 알려졌다. 

이혼한 주 양육자가 생활의 안정을 찾고 양육 스트레스를 해결하기 위해 서둘러 재혼해 자녀와 애착 형성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 계부모가 자녀를 통제하려고 할 때 학대가 발생하기도 하는데 재혼 실패를 두려워한 주 양육자는 그 상황을 방치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자기 감정을 억압하며 점점 우울로 빠져들거나 적극적으로 자기방어를 하면서 반항하고 집이 답답하다며 가출하고 생활비 마련을 위해 비행을 저지르는 것이다. 부모의 잘못으로 아이가 피해를 당하는 것이다. 

아동학대의 원인은 자녀가 아닌 부모에게서 찾아야 한다. 아동학대가 부모의 정서 불안이나 정신건강에서 비롯됐다면 전문 상담가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아동학대가 부모의 우울과 알코올 문제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은데 보호자가 자기 문제를 인정하지 않을 때 현장에 있는 전문가들이 가장 큰 어려움을 겪는다. 

자신을 정신병자 취급한다고 하거나 하루하루 힘든 일을 마치고 피로회복제로 마시는 술을 못 마시게 하면 자기한테 죽으라는 말과 같다며 불같이 화를 내기도 한다. 

자기도 맞고 컸는데 요즘 아이들은 너무 오냐오냐하며 키워서 버릇이 없다며 아이나 아동복지기관 탓을 하기도 한다. 

어렵사리 마음을 헤아리며 좋은 관계가 형성됐을 때 부모에게 아이의 슬픔과 마음을 알아주고 힘보다는 공감과 정서적으로 양육하면 좋겠다는 이야기가 전달되면 가족이 함께 모여 가족회의를 열기도 한다. 

이 자리에서 어떤 부모는 자기 뜻에 따르지 않는 아이가 답답하다며 “너한테 뭐가 문제고 불만이냐?”고 오히려 하소연하지만 아이 입장에서는 고생하는 부모 앞에서 대놓고 ‘부모 때문’이라고 말할 수는 없고 그냥 “자기가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고 소극적으로 말하기도 한다. 필자는 여기서부터 하나씩 하나씩 가족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

얼마 전 한라산 둘레길인 동백길을 걸었다. 정말 긴 길이었다. 걷고 또 걸어도 끝나지 않더니 6시간 만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길 잃을 염려의 마음이 올라올 때마다 한라산 둘레길이라 쓰인 노란 리본과 이정표들이 걱정 말라고 속삭이듯 인사를 건넸다.

‘아! 사는 동안 누군가에게 잠시라도 안내자가 될 수 있다면 더 바랄 것 없겠구나’ 하는 마음이 어느 새 담겨졌다.

서성이는 시간을, 서성이는 마음을 담아 걷기만 했을 뿐인데 밝은 빛은 어디서 오는 걸까.

다음 회에는 사회가 급격하게 변할 때 자주 등장하는 자살·자해 문제를 다뤄볼까 한다.

뉴제주일보 기자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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