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 중 다행
불행 중 다행
  • 뉴제주일보
  • 승인 2020.08.25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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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신 수필가

예상치 않은 일로 순식간에 모든 게 바뀌어 버린 불상사를 맞닥뜨리는 일은 누구에게나 고통이다. 그 고통은 사고나 질병일수도 있고 재해로 인한 것일 수도 있다. 어쨌든 그 상황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까지는 적어도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믿고 싶지 않아 부정하거나 비난이나 원망, 자책 등을 하다가 결국은 현실을 받아들이게 된다. 

평범한 일상이 아닌 바뀌어 버린 상황을 이겨나가는 태도는 각자의 몫이다. 불행을 그저 불행으로만 여기느냐, 그나마 다행으로 여기느냐는 선택의 문제다. 불행 중에도 다행이라는 끈을 붙잡는다면 훨씬 고통의 강도는 줄어들 것이다. ‘그래도 그만하길 다행이다’라는 생각은 고통을 줄여주는 처방약과도 같은 것이다.

가족이 다쳐서 병원응급실을 찾았다. 이 더위에 비닐 옷과 모자, 마스크를 쓰고 발열체크와 출입자 관리를 하는 그들을 보자 순간 콧등이 시큰했다. 다친 사람 빨리 응급실로 들여보내주지 않는다고 투덜거릴 뻔 했던 마음이 부끄러워졌다. 다른 때 같았으면 부랴부랴 응급실로 곧바로 들어갔을 터인데, 코로나로 응급실 출입도 달라진 것이다.

갑자기 닥친 불상사에 속상한 마음은 잠시뿐, 환자의 고통에 마음이 아파온다.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마음이 초조하고 불안하다. 들것에 실려 들어오는 환자를 보니 심각해 보인다. ‘외상은 그나마 다행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더 심한 환자의 상황을 보면서 위로받다니 참으로 이기적인 내 모습이다. 이처럼 고통이나 불행이 찾아왔을 때 상대적으로 더 심한 타인의 고통이나 불행이 때로는 위로가 될 때가 있다.

병동에 와보니 아픈 부위와 정도가 다양한 환자들이 많다. 그들을 보면서 ‘불행 중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다른 환자들도 은연중에 더 심한 환자를 보면서 위로를 받는 것 같다. ‘힘든 때 일수록 위를 보지 말고 아래를 보라’는 옛 어른들의 말이 맞다. ‘매사에 감사하라’는 성경의 가르침과 통하는 말이다.

‘더 해빙(The Having)’이라는 책의 내용이 떠오른다. 부자가 되고 싶으면 돈이 ‘없음’에 생각이나 감정을 소비하지 말고 ‘있음’에 더 감정을 느끼라고 했다. 돈이 ‘없다’고 생각하면 늘 돈은 없다고 느낄 것이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가지고 있는 돈에 감사함을 느낀다고 했다.

필자는 요즘 병원에서 환자를 간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감사하고 있다. 머리를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고 한쪽 다리만 다처서 다행이고 시간이 지나면 고통도 끝나리라는 희망이 있어서 감사하다.

전국은 폭염과 수재피해, 코로나 확산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국민 대부분은 ‘불행 중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희망의 끈을 붙잡고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으니 희망적이지 않는가.

뉴제주일보 기자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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