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의 충돌
가치의 충돌
  • 고경호 기자
  • 승인 2020.08.23 16: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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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일상생활에서 꽤 자주 ‘가치의 충돌’을 경험한다.

배달 음식을 시켜 먹으면서 일회용품 사용을 걱정한다던가, 일과 삶 사이의 균형(워라밸)을 찾기 위해 고민하는 것들이 일상 속 가치 충돌이라 할 수 있겠다.

언론에서 다루는 가치 충돌은 성격과 모양이 다양하다.

‘님비’(NIMBY)에서부터 여-야 혹은 보수-진보 갈등 등이 대표적이다. 최근 정쟁에서 가장 흔히 애용되는 ‘내로남불’도 빼놓을 수 없겠다.

최근 취재 과정에서 기자 스스로도 고민했던 가치 충돌이 있다.

바로 대정향교 ‘보물’ 승격과 인근 토지주들의 ‘재산권’ 충돌이다.

보물은 역사적·예술적·학술적 가치가 큰 것으로서, 국가가 법적으로 지정한 유형 문화재다.

다시 말해 국가가 직접 보호해서 후대에 반드시 물려줘야 할 만큼 큰 가치를 지녔다는 것이다.

재산권은 사법상·공법상의 경제적 가치가 있는 일체의 권리다.

토지주는 해당 토지는 물론 이를 활용해 발생하는 경제적 가치를 모두 갖는다.

제주특별자치도 세계유산본부는 대정향교 대성전과 명륜당을 보물로 승격하기 위한 절차에 나섰다.

문화재청은 이미 현지조사를 완료했으며, 오는 12월 승격 여부를 최종 결정할 예정이다.

대정학교 대성전과 명륜당이 보물로 승격되면 인근의 건축행위 제한 면적도 대폭 늘어난다.

인근 토지주들이 재산권 보존대책위원회를 구성해 반발하고 있는 이유다.

충돌하는 가치의 크기가 서로 다르면 선택은 쉽다. 큰 걸 택하면 된다.

과거에는 국가의 사업, 혹은 국가의 정책 앞에 개인의 재산권은 쉽게 뭉개졌다.

그러나 지금은 기업의 이익이 정부의 정책에 영향을 미칠 만큼 재산권의 힘이 강해졌다.

그래서 대정학교 보물 승격과 재산권 침해 갈등은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다.

그나마 토지주들은 대정학교의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하고 있고, 보물 승격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제는 보물 승격을 추진하고 있는 행정당국이 재산권 침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고경호 기자  kkh@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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