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블루’ 털어내는 제주유나이티드
'코로나 블루’ 털어내는 제주유나이티드
  • 홍성배 선임기자
  • 승인 2020.08.19 16: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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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고 어려울 때일수록 예상을 뒤엎는, 남과 다른 한 수가 빛을 발하는 법이다. 올해 제주유나이티드를 지켜보면서 느낀 것이다.

팀 창단 이후 첫 강등을 맛본 제주유나이티드는 절치부심 전열을 정비하고 연초부터 다이렉트 승격을 준비했다. 그러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K리그가 시작조차 못하는 악재를 맞게 됐다. ‘시계제로’ 상황, 말 그대로 마냥 기다린다는 것은 괴로움을 넘어 모두를 무기력하게 만든다. 이 같은 상황에서 제주유나이티드의 톡톡 튀는 이벤트는 축구 경기와 축구 이야기에 목마른 팬들에게 단비와 같은 역할을 했다.

먼저 자가격리 하는 스포츠 스타들 사이에서 유행 중인 ‘스테이 앳 홈 챌린지’를 K리그 여건에 맞춰 새롭게 접목시켜 ‘스테이 앳 클럽하우스챌린지’를 기획해 냈다. 제주에서 시작돼 K리그 다른 구단으로 전파되며 긍정의 기운을 전달했다.

연습경기 온라인 생중계도 이목을 끌었다. ‘축구를 보여주는 게 최고의 팬서비스이며, 축구 자체가 최고의 콘텐츠’라는 판단에서 자체 연습경기를 온라인으로 생중계했다. 경기 전·후 인터뷰, 선수 입장 등 실전과 똑같이 진행됐는데, 누적 접속자가 3만7000명을 기록했을 정도로 호응을 얻었다. 온라인 생중계는 경기 준비부터 시합 당일까지 4일간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D-DAY 프로젝트’로 이어져 축구팬들의 궁금증을 해소하는 기회를 제공했다.

시기에 맞게 연고지와 상대를 배려하는 이벤트도 만들어 내면서 주목 받았다.

제주4·3 72주년을 맞아 동백꽃 패치를 단 유니폼을 입고 자체 청백전을 가졌다. 4월 한 달 간 공식경기에서 동백꽃을 달아 제주4·3을 알리고 희생자를 추모한다는 당초 계획은 리그가 시작되지 않아 불발했지만 연고지에 대한 구단과 선수들의 마음을 엿보게 했다.

최근에는 상대 팀 연고지의 아픔을 위로하는 시간을 마련해 동업자 정신을 보였다. 충남아산과의 경기 시작 전에 집중 호우로 큰 피해를 입은 아산시민과 수해 피해자들이 빠른 복구를 통해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제주도민과 함께 기원했다. 이밖에도 다양한 이벤트를 적절하게 진행하면서 축구팬들의 이목을 끌어왔다.

물론 눈과 귀를 사로잡는 마케팅도 필요하지만 결국은 경기력이 뒷받침하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연초 남기일 감독이 ‘팬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경기’를 강조했던 것도 이와 일맥상통한다.

지난 5월 K리그가 지각 개막해 뚜껑을 열었다. K리그2에서 강력한 우승 후보의 하나로 꼽혔던 제주유나이티드의 첫 출발은 불안했지만 서서히 본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리그가 축소되면서 반환점을 돌아선 현재까지 제주유나이티드의 승격 전쟁은 그야말로 예측불허다. 15라운드를 기준으로 수원FC가 승점 26점으로 선두를 달리고 있지만 5위 서울이랜드까지 승점 차는 4점에 불과하다. 1위와 7위까지 격차도 승점 6점, 단 두 경기의 결과에 따라 뒤집혀 질 수 있다. 제주유나이티드는 한 경기를 덜 치른 상황에서 승점 25점으로 선두와 1점 차로 3위를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어느 한 팀 만만한 곳이 없다. 그동안 경기를 지켜보면서 느낀 것은 선수들의 투지만 놓고 보면 K리그1을 앞설 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오는 23일 안산 그리너스FC와의 경기를 시작으로 26일 부천FC 1995, 29일 FC안양 등 일주일 사이에 제주월드컵경기장에서 세 차례의 격돌이 이어진다. 제주유나이티드의 승격의 향방을 가를 것으로 전망되면서 응원을 유도하기 위한 티켓 패키지까지 나왔다. 코로나19가 심상치 않은 상황에서 수도권에서의 경기는 벌써 무관중으로 전환됐지만, 제주에서는 2000명까지 직관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코로나로 일상이 위축 된데다 연일 가마솥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면서 짜증나기 일쑤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필수다. 그렇다고 일상을 포기할 수는 없다. 모처럼 서귀포에서 이어지는 축구 대잔치가 짜증과 무더위를 훌훌 털어버리는 한여름 밤의 청량한 한 줄기 바람이 되길 기원한다.

홍성배 선임기자  andhong@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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