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 줬던 보리수, 잘린 부처 얼굴을 끌어안았네
깨달음 줬던 보리수, 잘린 부처 얼굴을 끌어안았네
  • 뉴제주일보
  • 승인 2020.08.13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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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부. 역사 속 찬란한 불교 사원국가 아유타야(2)
폐허가 된 왓 프라 마하탓 사원 한쪽에는 기적처럼 커다란 보리수나무가 잘린 부처 석상의 머리를 뿌리로 감싸고 있다.
폐허가 된 왓 프라 마하탓 사원 한쪽에는 기적처럼 커다란 보리수나무가 잘린 부처 석상의 머리를 뿌리로 감싸고 있다.

■ 융성했던 왕국, 외세 침략에 멸망

‘사라지지 않는다’라는 뜻을 가진 아유타야 왕국은 1350년에서 1767년까지 왕궁 3곳을 비롯해 약 375개의 불교사원, 29개의 요새, 94개의 커다란 문이 세워졌었다는 오랜 역사를 지닌 불교국가였습니다.

한 때 말레이반도와 벵골만까지 세력을 넓히고 포르투갈과 무역을 하며 크게 발전했으나 1766년 버마(현 미얀마)의 공격을 받아 수도 아유타야가 함락되고 1767년 국왕이 행방불명되면서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버마 군이 아유타야를 침공할 당시 찬란했던 불교 유적을 파괴해 지금은 그 일부만 남아있다고 합니다.

방콕에서 76㎞ 떨어진 지역에 있는 아유타야는 동쪽으로 빠삭강이, 서쪽과 남쪽으로 차오프라야강이, 북쪽으로 롭부리강이 둘러싼 6㎢의 조그마한 섬입니다. 이 조그마한 섬에서 태국 역사상 가장 번영했던 아유타야 왕조가 무려 417년간 찬란한 문화의 꽃을 피웠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합니다. 

아유타야 왕국을 처음 세운 사람은 유통 왕으로 출신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지만 당시 주변에 수코타이 왕조가 있음에도 왕국은 세워졌습니다. ‘유통’이란 말은 ’돈의 요람‘을 뜻하며 왕조연대기는 ‘라마티보디’라는 이름으로 기록되고 있다고 합니다. 

라마티보디 1세는 소승불교를 국가의 공식적인 종교로 지정하고 동시에 힌두의 법전인 ‘다르마샤스트라’와 태국에서의 관습을 바탕으로 법전을 정비했습니다. 그가 정비한 법전은 근대적인 법전이 정비되는 19세기까지 태국의 기본법전으로 역할을 했습니다.

■ 머리 잘린 불상, 참담했던 역사의 상흔 고스란히

번영했던 왕조, 그리고 침략과 파괴의 역사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아유타야 왕국. 

무너져 버린 사원으로 들어선 순간 목이 잘린 불상과 머리만 남은 불상들이 나뒹굴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보자 며칠 전 미얀마 불교 성지들을 돌아보고 온 저는 ‘미얀마도 같은 불교국가였는데 왜 사원과 불상들을 이렇게도 처참하게 파괴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발길이 닿는 곳곳은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아직 생생하게 전쟁의 흔적이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3명의 아유타야 왕을 모시기 위해 15세기에 세워진 왕궁 내 왕실사원, 그곳에 있는 불에 타다 남은 높은 불탑이 눈에 들어옵니다. 

폐허가 된 사원 곳곳에서는 머리가 잘려 몸통만 남은 불상들을 볼 수 있다.
폐허가 된 사원 곳곳에서는 머리가 잘려 몸통만 남은 불상들을 볼 수 있다.

잠깐 들은 설명에 따르면 1500년 라마티보디 2세 때 높이 16m의 거대한 불상을 조각하고 약 170㎏의 금을 불상 표면에 입혔답니다. 그러나 1767년 아유타야를 침략한 버마 군이 불상 표면의 금을 녹이기 위해 불상에 불을 지르는 바람에 금은 녹아 없어졌고 사원 역시 불길에 휩싸여 불탑 3개를 제외한 대부분이 무너져 지금은 붉은 벽돌들이 마치 파편처럼 흩어져 있습니다. 

사실 이런 유적지를 다닐 때는 잘 아는 사람과 동행해 자세한 설명을 들어야 촬영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되는데 아무 것도 모르고 돌아다니고 있답니다. 

주어진 시간 내 많이 보고 많이 촬영해야 한다는 생각에 어디가 중요한 곳인지도 모르고 다니고 있는 것입니다. 

왓 프라 씨 싼펫 왕궁사원을 돌고 나오는데 커다란 나무 아래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뭘까?’ 하고 들여다보니 큰 보리수나무 뿌리에 불상 머리가 박혀있습니다. 라오스에서 본 그 사진, 바로 나무뿌리에 휘감긴 불상 머리의 현장입니다. 순간 저는 ‘아~그렇게 찾던 그 현장이 여기 있구나’ 하고 감격했답니다.

왓 프라 마하탓, 이 사원은 참담했던 역사의 상흔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곳입니다. 사람들이 길게 줄지어 기다리는지 주변에 모여 있고 나무 아래 경찰 복장을 한 사람이 불상 훼손을 막기 위해 경비를 서고 있습니다. 나무 아래 모여든 사람들은 엎드려 절을 하거나 두 손을 모아 기도를 올리기도 합니다. 그 옛날 참담했던 순간을 회상하는 것 같습니다. 

몸통에서 떨어진 불상 머리가 저 나무뿌리에 박혔기에 지금 이 모습을 보고 있는 우리가 당시의 처참했던 모습을 연상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참 많은 사진을 찍었답니다. 이런 내 모습을 본 경비원이 ‘무슨 사진을 그렇게 많이 찍느냐’는 듯 눈짓하는데 그 순간 눈이 마주쳐 쑥스러운 눈인사를 나눴습니다. 

몸통은 어딜 가고 머리만 남아, 그것도 커다란 보리수나무 뿌리에 휘감겨 그 오랜 세월 동안 당시의 참담했던 순간을 전하고 있을까. 폐허가 된 아유타야 왕궁에서 가장 인상적인 모습인 듯합니다. 

흥분된 마음을 진정하고 잠시 불상이 박힌 보리수나무 옆에 앉아 쉬면서 주변을 살펴보니 사방에 머리는 없고 몸통만 남아있는 불상이 즐비합니다. 

머리 말고도 팔이나 다리가 잘린 불상들도 눈에 띄었다.
머리 말고도 팔이나 다리가 잘린 불상들도 눈에 띄었다.

저 불상들의 머리는 어떻게 됐을까? 기록에 따르면 버마 군이 침략했을 때 아유타야의 기상을 꺾으려는 의도로 불상 머리를 잘라버렸다고 합니다. 정신없이 뛰어다니며 여기저기 찾아봐야 하는데 도저히 발길을 돌릴 수가 없습니다. <계속>
<서재철 본사 객원 大기자>

뉴제주일보 기자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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