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의 역사를 넘어 화해와 상생을 만나다
아픔의 역사를 넘어 화해와 상생을 만나다
  • 부남철 기자
  • 승인 2016.03.31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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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제주는 노란색과 분홍색의 꽃들이 섬 전체를 물들인다. 68년 전 제주의 아름다운 봄은 핏빛으로 물들었고 그 아픔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으로 제주인들의 가슴에 멍울로 남아 있다.
제주의 4월은 아직도 어느 시인의 말처럼 ‘잔인한 4월’이지만 제주인들은 이 트라우마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68년 전 갈등의 역사를 극복하고 희생자들의 아픔을 함께 느끼고 화해와 상생을 위해 조성된 제주4・3 평화공원을 찾아 과거의 아픔을 맞이하고 미래의 평화를 생각해보자.

▲비문 없는 비석(백비)=제주4・3의 역사를 찾아가는 여정의 첫 관문인 제1관 역사의 동굴의 긴 터널을 지나면 원형의 천장 아래 누워있는 ‘백비(비문 없는 비석)’을 만나게 된다. 제주4・3은 아직도 미완으로 남아 있다. 제주4・3이 국가추념일로 지정된 이후에도 이념의 대립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제주4・3의 진정한 해결이 이루어지는 날, 비문이 새겨질 것이며 누워 있는 비석도 세워질 것이다.

▲소원지 및 ‘해원의 폭낭’=“제주4・3의 아픈 역사를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제주4・3평화공원이 2008년 3월 개관한 이래 연평균 18만 명이 다녀갔다. 그들의 소원지가 빼곡하게 적혀있는 전시실 출구 벽면을 보고 있노라면 제주4・3의 아픔을 다시 한 번 느끼고 현재를 되돌아보게 한다. 이 공간을 통해 우리는 어두운 터널에서 다시 광명천지로 빠져나오게 된다. 그 앞에 서 있는 해원의 폭낭에도 이 곳을 다녀간 많은 이들의 편지글들이 걸려 있어 제주4・3을 통한 공동체적 만남과 제주4・3 희생자의 해원을 기원하고 있다.

▲각명비=제주4・3평화전시관을 나와 위령탑으로 향하게 되며 위령탑을 둘러싸고 있는 각명비를 만나게 된다. 이 곳에는 제주4・3 희생자의 성명, 성별, 당시 나이, 사망 일시와 장소 등을 돌에 새겨 아픈 역사가 지워지지 않고 영원히 기억되도록 함으로써 평화・인권의 소중함을 느끼게 한다.

▲제주4・3희생자의 넋을 달래는 수의 ‘귀천’=위령탑을 지나 위령제단으로 가는 길목에 ‘귀천’을 만나게 된다. 제주4・3당시 아무런 이유 없이 죽어간 사람들의 넋을 달래기 위한 조형물이다. 제주4・3 당시 제대로 된 장례조차 치르지 못한 영혼들이 이제라도 수의를 입고 편안히 저승길로 가시라는 해원의 의미를 담고 있다.

▲행방불명인 표석=말 그램도 아직까지 시신을 찾지 못한 제주4・3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는 공간이다. 총 3806기의 표석이 아직도 진행 중인 제주4・3의 고단한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흩날리는 눈(비설)=제주4・3 희생자들을 만나고 나오는 길목에서 우리는 모녀를 만나게 된다. 현 위치(제주시 봉개동) 근처에서 희생된 모녀의 비극을 모티브로 표현된 작품이다. 토벌대가 쏜 총에 맞아 죽음의 순간에 이르면서까지도 딸을 끌어안은 어머니의 모성애를 통해 당시 억울하게 희생된 생명들을 영원히 기억하겠다는 다짐을 하게 한다. 거센 바람에 흩날리는 눈이라는 작품명처럼 덧없이 흩날리는 눈처럼 아무런 희생없이 스러져간 제주4・3의 희생자들의 겪었을 고통에 가슴을 여미게 된다.

부남철 기자  bunch@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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