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이름을 부른다
너의 이름을 부른다
  • 뉴제주일보
  • 승인 2020.08.04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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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희 시인

오랜만에 생수와 간식을 챙기고 필기도구도 살뜰하게 배낭에 넣는다. 오늘은 더도 덜도 말고 한 가지만이라도 확실하게 배워야지 하는 마음으로 집을 나선다. 강사님이 길가에 핀 들꽃도 이름을 불러 주면 야생화이고 모르면 잡초라고 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김춘수의 중에서

 

무수히 많은 들꽃들이 이름을 불러주길 바란다는 생각에 열심히 사진을 찍고 메모도 해본다. 오늘은 안덕계곡을 품은 창고천을 따라서 펼쳐진 생태길 탐방인데 앞 시간에 배운 며느리밑씻개와 아왜나무, 후박나무도 다시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요즘 보기 드문 삼마도 만나 반가운 마음에 아는 척 해본다. 삼마는 용돈이 궁하던 어린 시절에 용돈 벌이가 돼주었다. 비창을 들고 밭에서 삼마를 캐다가 밭주인에게 혼나던 일도 추억으로 되살아나고 삼마와 바꿔 먹던 과자 뚱딴지 맛도 그리워진다.

한의원에 근무할 적 일이다. 한약재로 쓰이는 귀한 재료들이 낯설지 않고 주위에서 보던 것들이 꽤 있었다. 친구들과 캐러 다녔던 삼마와 순비기 열매 그리고 인동꽃, 말린 지네. 무심히 봤던 모든 것들이 병을 낫게 하는 귀한 약재로 쓰인다는 사실에 신기하고 들떴던 기억이 어제 일 같다.

장마가 지났음에도 습도가 높아 걷는 내내 땀으로 온 몸이 천근같은데 강사님이 길을 걸으며 설명하다가 잠시 멈춘다. 하나하나 눈길 주며 이름을 불러 주는데 이름이 불리는 그 순간 나도생강은 진하게 꽃을 피우고 간절히 두 손을 모아 씨방을 감싸고 있는 닭의장풀은 이슬을 머금으며 청초함을 더한다. 그냥 지나쳤을 잡초의 이름을 알고 눈을 마주치는 시간들이 나에게는 경이로움이다. 암행어사의 마패로 쓰였다는 산유자 나무, 여우의 얼굴을 닮았다는 여우팥. 북채로 많이 쓰여서 심방들이 좋아했다는 탱자나무는 귤나무를 접붙이기 할 때 뿌리목으로 쓰이기도 하지만 소의 코뚜레로도 이용했다고 한다.

이른 봄에 제일 먼저 꽃을 피운다는 길마가지나무가 더위에 지친 나에게 힘을 내라는 듯 가지를 흔들어 보이며 시의 마지막 구절을 들려준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뉴제주일보 기자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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