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자비한 폭탄비에 파괴됐던 땅
무자비한 폭탄비에 파괴됐던 땅
  • 뉴제주일보
  • 승인 2020.07.30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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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부. 동남아 유일의 내륙국 라오스를 가다(8)
베트남 전쟁 당시 라오스 폰사반 지역에서는 ‘비밀전쟁’이 벌어져 9년간 무려 200만t에 이르는 폭탄이 떨어졌다고 한다. 사진은 폭탄이 떨어지면서 만들어진 웅덩이들.
베트남 전쟁 당시 라오스 폰사반 지역에서는 ‘비밀전쟁’이 벌어져 9년간 무려 200만t에 이르는 폭탄이 떨어졌다고 한다. 사진은 폭탄이 떨어지면서 만들어진 웅덩이들.

■ 땅 속에 박힌 불발 폭탄 3000만개 달해

베트남 전쟁 당시 라오스 북부 폰사반(Phonsavan) 지역에서 벌어졌던 미국의 ‘비밀전쟁’에 대해 조금 더 알아보겠습니다. 

당시 에어 아메리카(Air America) 군사기지는 라오스와 태국의 국경지대인 우돈타니(Udon Thani)에 있어 북베트남 수도 하노이를 직접 타격할 수 있는 거리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북베트남 방어망이 견고했고 기상 악화 등으로 하노이까지 비행하지 못 하면 폭탄 싣고 기지로 회항할 수 없어서 남은 폭탄을 씨앙쿠앙(폰사반)에 투하하는 경우가 많았답니다. 

너무도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이 전쟁 아닌 전쟁으로 라오스 북부와 남부 인구의 80% 정도가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여기에다 ‘불발 폭탄’(Unexploded Ordnance·UXO)으로 인한 2차 피해자가 엄청나게 많았답니다. 

당시 미국 폭격기가 투하한 폭탄 가운데 30%가 터지지 않고 땅 속에 그대로 박혔는데 이러한 불발 폭탄은 대략 3000만개에 달한다고 합니다. 

불발 폭탄은 산과 언덕뿐만 아니라 도로와 집, 학교 운동장, 논두렁에 그대로 남아 있어 아이들이 불발 폭탄을 가지고 놀다가 또는 농사를 짓다가 터져 사망자가 계속 늘어났답니다.

더 안타까운 것은 전쟁 때문에 궁핍한 생활을 해온 라오스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 불발 폭탄을 수집해 팔았다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도 폭발 사고가 잦아 전쟁 이후 불발 폭탄 폭발 사고로 2만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아직도 매년 60명 이상이 불발 폭탄 사고로 사망하고 있답니다.

돌 항아리 유적은 60개 지역에서 발견됐지만 미비한 도로 사정과 곳곳에 남아 있는 불발 폭탄 때문에 방문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폰사반에서 가깝고 대량의 돌 항아리 유적이 밀집한 텅 하이 힌 능(1번 유적), 텅 하이 힌 썽(2번 유적), 텅 하이 힌 쌈(3번 유적) 등 3곳만 방문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개방된 유적지에도 철조망이 쳐 있거나 위험표시가 있는 곳은 지뢰나 불발 폭탄이 있을 수 있어 출입을 막고 있습니다.

1~3번 유적지까지는 총 68㎞로 1번 유적지까지는 도로가 포장됐지만 나머지 구간은 비포장도로입니다. 제가 돌아본 1번 유적지는 3곳 중 가장 규모가 큰 곳으로 모두 334개의 돌 항아리가 남아 있습니다. 

이곳 언덕의 제일 높은 자리에는 현재까지 발견된 것 중 가장 큰 돌 항아리가 있는데 크기가 2.5m, 무게가 6t으로 하이 째움(Hhi Chaeum)이라 불립니다. 이 명칭은 이 지역에 평화를 가져온 군주(째움)를 칭송하기 위해 붙였다고 합니다.

최근 조사에서 1번 유적지 돌 항아리들이 폰사반에서 북서쪽으로 15㎞ 떨어진 곳에 있는 해발 1433m의 푸껭(Phu keng)산에 있는 채석장에서 운반돼 만들어진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 엄청난 무게의 사암들은 코끼리를 통해 육로로 운반하거나 뗏목을 이용해 강과 수로로 운반해 온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비밀전쟁 기간 폭탄이 비 오듯 쏟아졌음에도 이 지역 돌 항아리들은 크게 훼손되지 않고 비교적 보존이 잘 돼 놀라움을 자아낸다.
비밀전쟁 기간 폭탄이 비 오듯 쏟아졌음에도 이 지역 돌 항아리들은 크게 훼손되지 않고 비교적 보존이 잘 돼 놀라움을 자아낸다.

■ 의미 깊었던 라오스 여행을 마치며…

언덕을 내려와 넓은 벌판의 돌 항아리들을 돌아보자 주변에 깊은 웅덩이가 몇 개 보이는데 이 웅덩이들이 폭탄이 떨어졌던 자리랍니다. 

바로 옆에는 커다란 바위에 자연동굴이 있어 들여다보니 별다른 흔적은 없고 안내문이 있습니다. 운전사에게 들어보니 전쟁 때는 파테트 라오(Pathet Lao·라오스 공산당)의 은신처로 쓰이기도 했고 그 이전에는 돌 항아리를 만드는 가마로 사용했다는 학설과 돌 항아리를 만들지 못하는 일반인들의 화장터였을 거라는 주장이 있다고 합니다.

엄청난 돌 항아리 유적에 놀라고 베트남 전쟁으로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폭탄이 비 오듯 쏟아졌었다는 현장이라는데 더욱 놀랐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미스터리한 점은 ‘비밀전쟁’ 기간에 엄청난 폭탄이 떨어졌음에도 돌 항아리 유적이 크게 훼손되지 않고 잘 보존됐다는 것입니다. 

폰사반에 오기 전 들렸던 여행사에서 본 책자에 눈에 띄는 사진 한 장이 있었습니다. 한 가정집에서 대문 대신 커다란 불발 폭탄을 양쪽에 세워둔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폭탄이 떨어졌고 얼마나 많은 불발 폭탄이 널려 있기에 집 대문으로 불발 폭탄을 세워뒀을까’ 하고 이 사진 한 장이 주는 의미를 깊이 생각했습니다. 운전사에게 혹시 아직도 그런 집들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산속 마을에는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합니다.

시간이 없으니 서둘러야 한다며 운전사가 길을 재촉합니다. 돌아가는 길에 혹시 사진에서 봤던 것과 비슷한 가정집이 있는 마을을 지난다면 알려 달라고 부탁하며 다시 길을 나섰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의미가 깊은 여행을 마치면 뒤돌아보고 또 뒤돌아보며 아쉬움을 달래봅니다. 어떻게 돌아왔는지 왕복 18시간의 강행군 끝에 늦은 밤 숙소에 도착했는데 여전히 폰사반 돌 항아리 유적이 눈에 아른거립니다.

폰사반 여행을 끝으로 짧은 라오스 일정을 마치고 귀국길에 비운의 옛 불교국가를 찾아갑니다. <계속>

<서재철 본사 객원 大기자>

이번 라오스 여행을 함께한 일행과 돌 항아리를 배경으로 소중한 추억 한 장을 남겼다.
이번 라오스 여행을 함께한 일행과 돌 항아리를 배경으로 소중한 추억 한 장을 남겼다.

 

뉴제주일보 기자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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