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일보의 진실 찾기, 희망은 있다'
'제주일보의 진실 찾기, 희망은 있다'
  • 김태형 선임기자
  • 승인 2020.07.15 17: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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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푼의 깜냥도 아닌 것이/ 눈 어둔 권력에 알랑대니/ 콩고물의 완장을 차셨네/ 진보의 힘 자신을 키웠다네/ 아이러니 왜이러니 죽 쒀서 개줬니/ 아이러니 다이러니 다를 게 없잖니/ 꺼져라! 기회주의자여”

돌아온 가객 안치환이 새로 발표한 노래 ‘아이러니’는 권력의 탐욕에 빠져 원칙과 상식을 잃어가는 세상에 대해 거침없는 독설을 쏟아낸다. 안치환 특유의 록(rock) 비트를 타고 강렬함을 더한 노래는 아이러니하게도 직설 화법에 따른 ‘불편함’보다 ‘통쾌함’을 선사한다.

정곡을 찌르는 그의 외침은 샤우트 창법에 실려 묵직함을 더한다. 통렬하게 비판하는 날선 칼끝은 ‘진보라는 가면을 쓰고 권력을 탐하며 기생하는 기회주의자’에게로 향한다.

“순수가 무뎌졌다”는 가객의 말처럼 보수·진보로 나눠 극한 진영 논리에 매몰돼가는 세상은 시름시름 순수성을 잃어가고 있다. 이로 인해 각계각층의 사회 구성원들은 ‘옳고 그름’조차 제대로 판단하기 어렵고, 곳곳에서 공정성과 원칙들이 무너진 현실들을 목격하면서 말 그대로 ‘진실과 거짓말의 종이 한 장 차이’ 시대로 내몰리고 있다.

과연 진실은 무엇이며, 거짓말은 어떻게 포장되는가. 지난 27년에 걸쳐 글쓰기를 업으로 삼아온 한 언론인의 시선으로 볼 때 진실 찾기는 전문가들조차도 확답하기 어려운 문제다. 그 대신 흩어진 ‘사실(fact)’을 토대로 의문을 품으며 퍼즐 맞추기 식의 다각적인 접근을 통해 진실에 근접하는 노력을 이어갈 뿐이다.

반면 진실을 왜곡하는 거짓말은 의외로 포장하기도 쉽고, 사람들을 현혹하게 만든다. 복잡하게 얽힌 내용적 사실을 확인하기 이전에 자신에게 유리하거나 쉬운 쪽으로 미리 예단한 후 “그게 진실”이라고 우기면 되기 때문이다.

넘쳐나는 미디어 정보 홍수 시대에 한탕을 노린 ‘가짜뉴스’가 판치는 이유다. ‘가짜뉴스’가 다름 아닌 언론에서 직접 생성된 것이라면 파장은 이루 말할 것도 없다. 본지와 연관된 ‘제주일보’ 제호에 대한 이야기다.

최근 제주新보는 법적 소송에서 이겼다며 ‘빼앗긴 제주일보 제호를 되찾아 사용한다’는 사고와 함께 전면광고까지 냈다. 다른 신문 광고라면 몰라도 자사 지면에 전면광고를 내는 이례적인 상황을 어떻게 봐야 할까?

이를 토대로 기자협회보는 ‘제주新보, 제주일보 제호 되찾았다’는 기사를 냈다. 제주新보의 제호를 바꾼 15일자 1면에는 ‘뺏겼던 그 이름 되찾다’라는 제목의 칼럼니스트 글이 실렸다. 제주新보 사고 내용을 그대로 사실로 인정하고 쓴 글이다. 하지만 사고 내용이 거짓이라면?

본지는 이에 대해 사고를 통해 “제주新보는 상표권 제호 경매에서 가장 먼저 포기한 후 제호 상표권 등록까지 무효화한, 제주일보 제호의 가치를 스스로 포기하고 무너뜨린 장본인”이라며 “앞으로 법원의 판단을 받아야 하는 제호 환원은 거짓”이라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글쓰기의 기본은 ‘팩트 체크’다. 사실이라고 해도 법적 소송 중인 이해관계가 엇갈린 민감한 사안이라면 상대방 입장이나 반론을 한 줄 써주는 게 기본이지 않은가. 아무리 곰곰이 되씹어도 돌아오는 결론은 공정하지도 상식적이지도 않은, 단지 주관적인 글이라는 생각이다.

더더욱 마음 구석 깊숙한 곳을 쓰리게 만드는 것은 언론 스스로 제3자까지 앞세워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진실 아닌 뉴스’를 만들어냈다는 점이다.

물론 본지도 이번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 제공자라는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하지만 사회적 공기인 언론으로서 그동안 상대방을 존중하고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려는 노력들이 단지 본지만의 순수한 착오였다는 점을 깨닫게 돼 더욱 슬픈 현실이다. 적어도 부조리와 맞서며 진실을 추구하는 언론이라면 비겁하지 않고 정당하고 당당한 모습을 보여야 하지 않을까?

이 글을 쓰게 된 배경은 또 다시 되풀이된 제호 사용을 둘러싼 이번 혼란으로 후배 기자들이 상처받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에서 출발한다. 청와대를 출입하는 고참 여기자 후배를 비롯해 그동안 묵묵히 맡은 현장 속에서 진실 찾기에 나선 그들이 제주일보를 만들어오고 만들어갈 주체이기 때문이다. 진정성 있는 위로를 기대하기에 앞서 단지 예전과 같은 일부 비아냥거림만 없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나아가 그동안 열악한 환경에서도 75년 전통의 제주일보를 만들어오다 일선에서 물러나거나 전직한 선배와 동료, 후배들은 물론 오늘도 지역사회 현장에서 진실을 찾는 모든 언론인들에게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게 돼 송구스럽고 죄송하다는 입장을 전하고 싶다. 그들이 있었기에 제주일보 부도 이후 갈등과 혼란 속에서도 때로는 경쟁하면서 배우고, 한편으로는 ‘연대’하면서 정론직필 정신을 잇는 정론지를 만드는 노력을 할 수 있었으니까.

그나마 위안되는 부분은 선후배와 함께 해온 진실 찾기를 위한 노력이 아직 끝나지 않은 현재진행형임을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제주일보의 진실 찾기, 희망은 있다.’

김태형 선임기자  kimth@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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