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에서 ‘개콘’이 사라진 이유
TV에서 ‘개콘’이 사라진 이유
  •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 승인 2020.06.28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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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의 막 말은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그런데 요즘은 국회의원, 장관이라는 사람들이 가세하면서 가히 막말 콘테스트 판이 된 느낌이다. ‘더 세게, 더 험하게 더 욕되게해야 등급을 받을 수 있는 양 갈수록 살벌해진다.

막말이 끊이지 않는 것은 정치적으로 득이 된다고 여기는 탓일까.

본인 부음(訃音)만 아니면 뭐든 신문 방송에 나오는 게 좋다는 관종(관심받고 싶어하는 사람)’들이니 존재감을 부각하고 들을 확 끌어잡자는 시도일까. 그렇지 않고서야 국회의원, 장관이라는 사람들이 개그같은 상식 밖 말로 세상을 시끌벅적하게 만들 턱이 없을 것이다.

정말 개그맨들이 울고 갈 일이다.

실제 그런 황당한 발언 이후 포털의 실시간 뉴스 검색 상층권에 올랐으니 개그 효과는 만점인 셈이다.

기가 막힌 것은 황당한 막말에 박수를 치는 이른 바 광()‘들이다. ‘(fan)’은 라틴어로 광신자를 뜻한다.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이성적 언어가 아니라 좋고 나쁨을 가리는 감정적 언어다.

팬의 정치화는 2000년대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부터다. 이후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도 생겨났다. 몇 년 전부터는 문재인 대통령을 추종하는 이른 바 ()들이 정치·사회적 영향력을 극대화하고 있다. 모바일 미디어 덕분에 영향력도 커졌다.

시민들의 정치 참여 통로라는 점에서 일정 부분 긍정적이다.

그러나 문제도 많다. 일부 극성팬들은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의 말을 맹목적으로 믿거나 다른 정치인을 비방하기 위해 가짜뉴스를 퍼뜨리는 등 사이버 공격을 일삼기도 하는 때문이다. 최근 정치인이나 장관의 팬을 의식한 상식밖 발언도 그 중 한가지다.

국회의원이나 장관은 공인(公人)이다. 공인의 말에 힘이 실리는 건 그들의 권위(權威) 덕이다.

권위란 뭔가.

최영미는 당신과 그가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목소리로/ 같은 말을 해도/ 사람들이 그의 이야기에만 귀를 기울이는 것이 권위라고 했다.(시집 꿈의 페달을 밟고중에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고 한 성철 스님의 말에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는 것도 권위 때문이다.

보통 사람들은 무심코 말했다 말이라고 다하는 줄 아느냐는 소리를 들을까 늘 조심 또 조심한다.

공인. 그것도 정치인과 장관이라는 사람들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는 천금보다 더한 무게를 실어야 마땅하다.

입에서 나오는 대로 다 내뱉어선 곤란하다. 말이 천박해지니 덩달아 이 나라가 저급해질까 걱정이다.

말을 뜻하는 ()’()’에는 입 구()’가 들어 있다. 품격을 의미하는 ()’에는 ()’가 세 개나 있다. 주고받는 말이 쌓여 인격을 이룬다. 개개인의 말에도 격이 있는데 하물며 정치인과 장관의 말임에랴.

생각이 말이 되고, 말이 행동이 되고, 행동이 습관이 되고, 습관이 성격이 되고, 성격이 운명이 된다고 한다.

요즘 막말이 끊이지 않는 것은 상대편이 하면 막말이어도 자기 편이 하면 사이다 발언으로 여기는 대중의 이중잣대가 그 토양이다.

하지만 갈증 날 때 사이다가 시원한 게 그 때 뿐이듯, 막 말은 부메랑처럼 자신을 때린다. 막 말로 신세 망친 정치인은 부지기수여도 성공한 정치인이 없는 이유다.

하이데거가 언어를 존재의 집이라고 했듯이 막 말은 그 사람의 인격과 정신세계를 의심케 한다.

최근 개그맨들이 다 보따리를 싸고, TV에서 왜 개콘이 사라진줄 아는가? 하도 희안한 말을 다 듣다보니 웬만한 개그가 시청자들에게 통하지 않는 탓이다.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boo4960@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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