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와 천지개벽
‘함께’와 천지개벽
  •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 승인 2020.06.14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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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래자연휴양림을 걸었다. 울창한 천연원시림에 들어서니 가슴부터 시원하게 뚫리는 기분이다. 난대와 온대의 식물들이 어우러진 이 숲은 언제 와도 싫지않은 ‘사이다 맛’ 같은 곳이다.

한달에 한번 만나 산길을 ‘함께 걷는’ 모임.

모두가 마스크를 가지고는 왔지만 아무도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이 맑은 숲 속까지 찾아와서 마스크를 쓰면 억울하지 않은가하는 표정으로.

제주의 봄은 늘 중국 대륙에서 날아오는 먼지와 산업시설 등에서 발생하는 미세먼지로 하늘이 노래고 햇빛마저 잿빛으로 흐렸다.

하지만 올해는 11년 만에 황사가 없는 봄을 보내며 여름을 맞는다.

온통 마스크로 복면을 하고 다니면서 힘든 기간을 보내는 사람들과는 대조적으로 제주도 전역에 황사가 단 한차례도 관측되지 않은 맑고 깨끗한 날이 계속된다.

▲코로나19 사태가 정치·경제·교육·문화 등 전반적인 구조 변화를 가져오는 가운데 뜻밖의 효과들도 있다.

인간이 고통을 받으면서 자연환경은 오히려 개선되는 아이러니다. 황사가 없는 봄이 제주에 찾아왔듯이 지금껏 인간 활동에 의해 위협받던 지구환경과 생태계는 숨통이 트인 모습이다.

외신 보도에 따르면 중국의 ‘대기 질 좋은 날’ 평균 일수가 지난해에 비해 21.5%나 늘었다고 한다. 자동차나 산업시설에서 배출돼 대기오염에 큰 영향을 미치는 이산화질소와 이산화탄소도 지난 두 달 사이 대폭 감소했다.

서해 바다 색이 상당히 맑아지고 똥냄새가 진동했던 베니스의 물이 관광객이 줄어들면서 파래졌다는 보도도 있었다. 현지 관광이 중단되면서 맑은 물 속에 물고기들이 떼 지어 다니고 곤돌라 옆으로 백조도 유유히 헤엄을 치고있다니 이거야 말로 ‘천지개벽(天地開闢)’이 아니냐.

▲자연과 환경만 ‘천지개벽’하고 있는게 아니다. 그렇게 변화를 거부했던 모든 기득권들이 허물어지고 있다. 제주지역에서도 벌써부터 온라인 쇼핑, 음식 배달, 원격 강의, 재택근무 등의 새로운 일상이 급격하게 확산되고 있다.

사람과 사람의 접촉을 최소화하는 ‘비대면(untact)’ 문화를 전면적으로 경험하고 있다.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비대면’은 대세가 되고 있다.

무엇보다 ‘비대면’의 효율성과 경제성이 부각되고 있다.

그래서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나고 나면 제주사회는 달라질 것이 분명하다.

우선 경제적 파국을 추스르고 나면 제주경제의 재편이 벌어질 것이다.

과거에 잘 나가던 기업이나 자영업종들이 점차 도태되고 디지털 경제의 흐름이 더욱 강화돼 새로운 경제 구조로의 전환이 가속화될 것이다. 사회적으로는 불평등, 인권침해, 빈부격차, 교육 문제 등과 같은 이슈도 커질 것이다.

▲문제는 우리 아름다운 일상도 ‘카메라 필름’처럼 박제(剝製)가 될까 두렵다.

우선 ‘함께’ 문화가 사망 선고를 받고있다. 아기 탄생에도 축하 방문이 금기가 됐고 노인들을 찾아뵙는 것도 매우 제한적이다. 이런 저런 회식 모임도 해체되고있다.

원시시대로부터 인간은 생존을 위해 모여살기 시작한 것이 사회의 탄생이고 어떻게든 모이고 만나면서 함께 했지만 이제는 ‘함께’가 곧 ‘위험’이 됐다.

구글이 코로나19 사태 전후 개인별 위치기록 데이터를 분석해보았더니 한국인은 영화관·레스토랑 등을 찾는 활동이 감소한 반면 국립공원·둔치·바닷가 등 탁 트인 야외 활동이 약 51% 증가했다고 한다. 우리의 지친 심신을 치유해주는 맑은 공기와 이름모를 야생화들이 피는 자연휴양림은 더없이 중요하다. 이런 휴양림이 있으니 ‘함께’는 다시 부활할 것이다.

사람은 ‘함께’ 할 때 비로소 인간(人間)이니까.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boo4960@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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