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봉 젤리
한라봉 젤리
  • 뉴제주일보
  • 승인 2020.05.26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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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선 수필가

100여 일이 지나도록 떠들썩하다. 사회적 거리두기 인명 피해 숫자 발표에 사람들은 불안함으로 전전긍긍하고 있다. 난데없는 바이러스 공포에서 난국을 극복할 방법은 진정 없을까.

이른 아침, 미국에서 전화가 왔다. LA 수필 K 회장은 원로작가로 우도 남훈 문학관 기증자와 미국에 이민 후 맺어진 인연이다. 몇십년을 동고동락했기에 제주를 제2의 고향으로 여기고 있다. 미국 이민자를 대상으로 잃어가는 모국어를 살리고 국내 문학 발전을 위해 지대한 공로자이다.

K 회장은 지난 가을 우도 출판 행사에 참석한 후 LA로 갔다. 갑작스러운 코로나19 사태로 LA에서는 자택 대피령인 세이프 엣 홈(safer at home)이 시행돼 마트 출입도 못 한다는 내용이다. 미국에서 급속히 확산한 이유는 마스크 착용을 하지 않는 습성 때문이다. 마스크를 착용하면 범죄인으로 인식할 정도의 문화여서 약국에서도 살 수 없다. 성급히 트럼프 대통령이 자택 대피령이 내려진 이유이다. 자택 대피령은 외출했다가 적발되면 바로 큰 금액의 벌금을 내기에 지켜야만 한다.

K 회장 집은 자녀가 떠난 빈 둥지에 북적거리던 문우의 발길마저 강제로 차단당한 셈이다. 갑작스러운 미국 정부의 대피령 발표에 기약할 수 없는 슬픔에 젖었다. 전화로 안부와 함께 살아 있음을 알려주었다. 물조차 떨어져 가는 절박함에 제주에서 샀던 한라봉 젤리가 먹고 싶다고 말한다. 상표 사진을 찍어 보내면서 약간만 보내 달라고 했다. 우체국도 백화점도 마트도 약국도 나갈 수 없는 상태이니 간절하였다.

제주특산 한라봉 젤리 스무 봉지와 극세사 마스크를 포장했다. 상품 금액은 소액이었으나 택배비가 십만원이나 나왔다. 두 달 이상 걸리는 배편 등기보다 사태의 시급함에 EMS 등기 우편물을 택했다. 출입국자제로 항공기도 결항하는 판에 일찍 도착하기만 바랐다. 우체국 담당자는 항균 마스크가 택배 내용물에 있으면 통관 위반으로 반송된다고 점검하며 되물었다.

보름이 지났다. K 회장은 울먹이는 톤의 전화였다. 한라봉 젤리를 먹었더니 살 것 같아 눈물 난다는 내용이다. 받자마자 한 봉지를 난데없이 다 뜯어졌고 갑갑한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살 것 같다 했다. 갇혀 사는 고통이 이런 것이냐며 호탕하게 웃는다. () 때문에 속이 후련하고 아픈 것도 낫겠다며 고마움을 전한다.

집안에서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답답한 심정으로 침통한 기분에 젖었다는 말이 이해갔다. 사회활동이 줄어드니 자연히 만나는 사람도 적어져 조용한 사색에 잠길 마음의 여유를 얻게 되었다는 말 잊지 않았다.

힘들 때 서로 힘이 되는 것은 나 혼자가 아니라 내 이웃이 나와 함께 있다는 열린 마음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감동하는 가슴이다. 서로에게 감동을 주고받는 순간 나도 모르게 에너지가 축적된다. 거리두기를 지키며 조금만 더 힘을 내었으면 한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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