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곡(玄谷) 양중해(梁重海) 기념관
현곡(玄谷) 양중해(梁重海) 기념관
  • 뉴제주일보
  • 승인 2020.05.24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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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중훈 시인·성산읍노인회장

마당 한쪽 응달진 곳, 긴 겨울을 넘긴 동백이 마지막 꽃잎 하나를 붙들다 아슬아슬 놓아버린 흔적이 새벽바람에 나뒹굴고 있다. 

문득  풋사랑의 향긋한 냄새 가득한 김유정의 소설 ‘동백꽃’과 함께 제주4·3 때 뚝! 지고만 제주양민의 목숨 같은 동백의 아픔이 함께 오버랩 되는 순간이다. 

내친김에 동백언덕 카멜리아 힐(Camellia Hill)을 찾았다. 이곳은 19만8000여 ㎡ 넓이에 80개국 동백나무 500여 품종 6000여 그루가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는 제주관광 힐링의 명소다. 

내가 이곳을 찾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동백꽃으로 뒤덮인 이 카멜리아 힐 숲 속에는 가곡 ‘떠나가는 배’를 작사한 현곡(玄谷) 양중해(梁重海) 선생의 기념관이 있어서다. 그곳에서 시인 양중해 선생의 향기를 마음으로 느끼기 위함에서다.

선생은 2014년 4월 향년 81세의 나이로 우리 곁을 떠나셨다. 생전에 제주문단의 큰 어른으로서 제주 ‘신문화’ 창간을 시작으로 60년대 제주문협, 제주예총, 제주문화원을 탄생시켜 제주문화예술의 초석을 다지신 선생을 우리는 기억한다. 

대부분 사람은 선생을 시인이기에 앞서 선비이며 현인 같은 분으로 별칭하기도 한다. 늘 온화하시고 서두르지 않으셨으며 남을 미워하거나 화내지 않으셨고 여유로운 미소와 더불어 단정함과 자연스러움을 함께 갖춘 엘레강스하신 분이셨다. 

어쩌다 기분 좋은 일이라도 있을 양이면 발갛게 달아오른 모습은 마치 수줍게 핀 동백꽃을 보는 듯 했다. 겨우내 봄을 향해 피어날 준비를 하는 동백처럼 서두르지 않으시는 선생의 모습은 동백이 간직한 순수 그 자체다. 그 때문에 그분을 ‘동백’ 혹은 ‘동백시인’이라고 부르는 것도 틀린 말은 아니다. 

나름으로 선생께서도 끔찍이 동백을 사랑해서 기회 있을 때마다 이 동백동산을 찾았다고 카멜리아 힐 양언보 대표는 귀띔한다. 그만큼 동백 숲 이곳은 양중해 선생의 영혼이 깃든 언덕이라는 고백이다. 

이 동백동산을 가꾸기 시작할 때부터 마지막까지 선생의 동백에 대한 애정과 정성이 깃들지 않은 곳은 거의 없다고도 했다. 

그래서 그랬을까. 이 공원 입구에는 선생이 동백과의 인연을 노래한 시비(詩碑)가 나지막이 자리해서 오가는 이들을 마중한다. 

“10년 뒤에/동백 언덕에 갔더니/동백꽃은/예전대로 붉게 피었더구나//전에 왔던 얼굴/기억해 두었다가/어찌 혼자 왔느냐?/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것이 아닌가?// 그렇고 그렇더라고 했더니/어찌 그럴 수가 어찌 그럴 수가…/슬픈 것은 난데/동백꽃들끼리 일제히 울음을 터뜨린다//” -‘동백 언덕에서’ 일부

그러고 보니 양언보 대표가 ‘현곡(玄谷) 양중해(梁重海) 기념관’을 이곳에 개관한 이유를 알 것 같다. 너무나 인간적인 선생의 순수에 이끌려 어느 순간 이곳에 선생의 기념관을 마련하고 싶어졌었다는 것이다. 

양중해 선생과 그는 형제지간도, 동향인도, 동학을 함께한 사이도 아니다. 인연이라면 그가 선생을 너무너무 존경하고 사랑한 인연, 그것 하나뿐이란다.

이곳에 아름다운 동백꽃이 필 수 있다는 것은 오염되지 않은 토양이 있기 때문이며 양중해 선생이야 말로 바로 그 오염이 안 된 토양 같은 분이시기 때문이란다. 따라서 자신도 미력이나마 오염이 안 된 한 줌 토양이 되고자 선생의 혼을 담아 그분의 기념관을 마련했다는 것이다.

오늘도 양언보 대표는 기념관에 비치된 현곡 선생의 서책과 유품들을 손수 정리하고 다듬으며 기념관을 찾는 이들을 반갑게 맞이하고 있다. 

선생의 영정 맞은편 벽면에는 ‘양중해씨를’이라는 박목월 선생의 헌시(獻詩)가 이 기념관을 자주 찾아뵙지 못한 나를 꾸짖듯 지켜보고 있다. 한없이 죄스럽고 부끄럽기 그지없다. 

기념관을 개관하신 양언보 대표에게 양중해 선생을 기억하고 사랑하는 모든 이들을 대신해 깊은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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