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충원에 ‘제주4·3길’이 있습니다"
"국립현충원에 ‘제주4·3길’이 있습니다"
  • 고경호 기자
  • 승인 2020.05.17 10: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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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주년 후 '4.3역사 대중적 관심' 받으며 작년부터 진행
민간인학살 막기 위해 4·28평화협상 주도 김익렬
무차별 도민연행, 탄압하다 부하에 살해당한 박진경
무장대로 위장한 특수부대 부대장 김명 등 다수 안장
16일 재경4·3청년회 등 4·3역사기행, 김익렬 장군 추모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에 제주4·3올레길이 있다고요?’
(사)제주4·3범국민위원회, 재경제주4·3유족청년회, 수도권 지역 제주출신들의 모임인 육지사는제주사름의 회원들이 16일 서울 동작동의 현충원에서 제주4·3의 발자취를 따라나섰다.
일제강점기 항일독립 운동가부터 해방과 분단을 거치며 우리역사 속에서 희생된 경찰과 군인, 군무원 등은 물론 전직 국가원수인 대통령이 모셔진 현충원 역시 한국현대사를 관통하는 제주4·3의 역사를 빗겨갈 수는 없었다.

16일 재경제주4.3유족청년회 회원 등이 국립현충원에서 '제주4.3길'을 따라 역사기행을 가졌다.
16일 재경제주4.3유족청년회 회원 등이 국립현충원에서 '제주4.3길'을 따라 역사기행을 가졌다.

지난 2018년 제주4·3 70주년을 계기로 4·3의 역사가 대중적으로 알려지면서 동작역사문화연구소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김학규 소장을 중심으로 지난해부터 현충원의 구석구석을 찾아가는 ‘동작 민주올레’ 이름의 역사기행 코스중 ‘현충원-제주4·3길’도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

가장 많은 조명을 받은 인물은 장군 제1묘역의 모셔진 김익렬 장군(1921~1988)이다. 4·3당시 9연대장으로 무고한 민간인들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김달삼과 4·28평화협상을 주도한다. 그러나 미군정의 방조와 묵인하에 우익청년단이 무장대 소행으로 왜곡시키며 자행한 5월1일 오라리방화사건은 결국 협상결결과 이후 미군정의 강력한 토벌작전으로 이어진다.
김익렬은 이후 유고록 ‘4·3의 진실’을 통해 “초토작전은 인도적으로 결코 허용될 수 없고 전시에도 명령하거나 묵인한 사령관은 전범으로 처형을 면키 어렵다. 하물며 전후(前後) 평화시에 자기가 군정하는 영토 내의 국민에게 이런 명령을 내렸다고 세상에 알려지면 그 결과는 엄청날 수밖에 없다”고 당시 상황을 기록했다.

16일 역사기행에 나선 참가자들이 4.3당시 민간인 피해를 줄이기 위한 평화적 해결을 위해 4.28평화협상에 나섰던 김익렬 장군을 기리는 추모행사를 가졌다.
16일 역사기행에 나선 참가자들이 4.3당시 민간인 피해를 줄이기 위한 평화적 해결을 위해 4.28평화협상에 나섰던 김익렬 장군을 기리는 추모행사를 가졌다.

해임된 김익렬 자리엔 박진경 중령(1920~1948)이 대신했고 민간인에 대한 무차별 연행에 나선다. “우리나라 독립을 방해하는 제주도 폭동사건을 진압하기 위해 제주도민 30만명을 희생시켜도 무방하다”고 말했던 박진경은 강경토벌작전 공로로 미군정으로부터 대령으로 특진되지만 44일만에 부하 문상길 중위에게 죽임을 당한다. 특진된 44일 동안 제주도민 300여명이 연행됐다.

4.3당시 무차별 연행에 나섰다 부하에게 살해당한 박진경의 묘비 앞 표석에는 "제주도에서 봉기한 무장봉기에 대해 소탕작전을 벌이던 중 산화, 국군의 귀감이 되었다”고 적혀 있다.
4.3당시 무차별 연행에 나섰다 부하에게 살해당한 박진경의 묘비 앞 표석에는 "제주도에서 봉기한 무장봉기에 대해 소탕작전을 벌이던 중 산화, 국군의 귀감이 되었다”고 적혀 있다.

 

54묘역에 안장된 박진경의 묘비 앞 표석에는 “제주도에서 봉기한 무장봉기에 대해 소탕작전을 벌이던 중 산화, 국군의 귀감이 되었다”고 적혀 있다.
참가자들은 김익렬 장군묘 앞에서 고인을 기리며 “당신이 9연대장에서 밀려나 제주를 떠난 뒤에도 고립된 제주의 참상을 알리기 위해 신문에 기고문을 내고, 유고를 작성해 4·3의 진실을 밝히고자 했던 글로 제주4·3의 진실은 더욱 명명백백하게 밝혀졌다”며 “살아생전 장군님의 행적은 빛을 보지 못했지만, 역사가는 장군님을 참된 군인의 표상으로 바르게 기록할 것”이라고 추모했다.
이외에도 현충원에는 월남한 뒤 육사5기로 교육과정을 마쳐 제주 9연대 소대장으로 처음 부임해 박진경의 강경진압을 지켜보고도 “양민을 학살한 게 아니라 죽음에서 구출하려고 했다”고 말했던  채명신 장군, 미군정의 민정장관을 지내 4·28평화회담 결렬에 따른 대책을 위해 제주중학교에서 열린 ‘5·5 최고수뇌회의’에 참여했던 안재홍, 무장대로 위장했던 특수부대 부대장 김명, 무장대와 전투과정에서 제주 오등리에서 사망한 고병선 중위(사후 소령으로 승진), 4·3민간인학살에 저항한 여수·순천항쟁의 인물 등도 함께 잠들어 있다.
‘4·3길’ 설명에 나선 김학규 소장은 “국립현충원은 그 자체로 대표성을 띠고 있고 제주4·3은 한국현대사의 시작이기에 4·3을 상징하는 인물을 현충원에 모시는 방법 등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며 “‘제주4·3이 대한민국의 역사’로 자리매김될 수 있도록 여러 활동이 이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고경호 기자  kkh@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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