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시대, 가정의 달 단상(斷想)
코로나19 시대, 가정의 달 단상(斷想)
  • 홍성배 선임 기자
  • 승인 2020.05.06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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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고하게 닫혔던 일상의 문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걱정하던 황금연휴가 끝나고 6일부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방역체계가 생활 속 거리두기로 바뀌었다. 연휴기간 20만 명 가까운 관광객이 밀려들었던 제주는 사회적 거리두기2주간 더 연장했지만 전반적으로 분위기가 바뀌고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무관중이라는 제약 속에서도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면서 프로야구가 막을 올렸고, 오는 8일 프로축구도 시동을 건다. 9일 열리는 제주유나이티드의 홈 개막전은 제주에서 공식적으로 스포츠 경기가 재개됨을 의미한다.

코로나19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진행형이지만 가장 민감하다고 할 수 있는 학생들의 등교일까지 확정됨에 따라 제한적이나마 그동안 꿈꾸던 일상으로의 복귀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물론 생활방역속에서 우리가 맞는 일상이 코로나19 발생 이전과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조금씩 일상으로의 복귀가 가시화하면서 그동안 요양병원 울타리를 사이에 두고 멈춰 섰던 노모와의 만남이 재개될 수 있다는 기대는 개인적으로 생활의 또 다른 활력소다. 얼마 전 빨간 색 차에 얽힌 치매 할머니의 자식 사랑이야기가 전해지면서 노모 생각이 더해진 게 사실이다.

보도에 따르면 누군가 자신의 차량 손잡이에 5만원권 지폐와 함께 과자와 떡 등 먹을거리가 담긴 봉지를 자꾸 끼워두고 간다는 신고가 경찰서 지구대에 접수됐다. 확인 결과 치매 증상이 있는 86세 할머니가 빨간 차만 보면 자식의 차로 보고 쌈짓돈을 꺼내왔던 것이다. 할머니는 어려운 형편으로 아들을 제대로 공부시키지 못한 미안함과 죄책감을 평생의 아픔으로 간직해 왔는데, 비록 치매에 걸렸지만 아들의 차 색깔만은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치매 할머니의 내리 사랑을 접하면서 아버지 상을 당한 지인이 들려줬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장례식장에서 만난 상주는 유학을 보낸 자식에게는 싹싹 털어 1000만원을 보내도 아깝지 않았는데, 형편이 어려운 늙은 아버지에게는 100만원도 제대로 쓰지 못했다며 가슴을 쳤다. 어찌 그만의 이야기일까. 자식을 키우는 입장에서 그 같은 한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부모가 몇이나 될까.

그런가 하면 의식도 없는 요양원의 노모를 10년 가까이 주말마다 찾은 지인도 있다. 그는 노모와 사별한 후 말 한마디 못하지만 얼굴 한번 보는 것만으로도 족했다. 부모가 살아있다는 그 자체가, 힘들지만 그로 인해 갈 곳이 있다는 것이 행복이었다고 했다.

대가족을 거느린 내 노모의 최고 덕목은 조냥이었다. 그런 노모가 생각을 바꿨다. 쓰나미와 지진해일을 겪은 다음이다. 2004년 인도네시아에서만 13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쓰나미와 천문학적 피해를 입힌 2011년의 일본 동북부 대지진과 해일을 목격하면서 노모는 지금의 중요성을 깨달았던 것이다. 모든 것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은 그만큼 충격이었을 것이다.

지구촌 모두가 겪고 있는 암울한 코로나19의 시대. 어려운 상황일수록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에 주목하게 된다. 그 메시지를 내 나름대로 이렇게 정의한다. ‘내일로 미루지 말고 지금 솔직하게 전하라.’ 부모뿐 아니라 형제자매, 자식들에게 마음을 제때 표현하지 못했다가 후회하는 모습을 주위에서 너무 많이 본다.

코로나19 속에서도 가정의 달이 어김없이 돌아왔다. 그리고 내일(8)은 어버이 날이다.

방역당국은 조용한 전파가능성을 언급하며 이번 어버이날에는 부모를 만나기 위해 요양병원이나 요양원 방문하는 것을 자제해 달라고 요청했다. 노모를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을 잠시 멈춘다. 요양병원에서 보내준 사진과 전화 통화로 위안 삼으며 가정의 달에 새로운 일상을 생각해 본다.

홍성배 선임 기자  andhong@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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