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말과 비판 사이
막말과 비판 사이
  • 뉴제주일보
  • 승인 2020.04.28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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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종태 시인·다층 편집주간

암울한 시대를 관통하고 있는 요즈음 우리나라의 현실을 골똘하게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국민은 불안과 고통에 몸과 마음을 추스르기 쉽지 않은데 그들을 위해 일을 하겠다는 정치인들의 관심목록에서 국민은 빠져 있는 듯하다.

선거를 치르는 과정에서 우리나라의 정치 수준을 여실히 보여주는 일들이 국민 앞에 펼쳐졌다. 그야말로 막말 대잔치가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그 결과를 가지고 승자와 패자라고 이분법적으로 가르는 것 또한 마뜩잖다. 

선거가 무슨 게임이나 싸움인가. 누가 이기고 지고라는 말 자체가 모순이고 우리의 정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는 표현이 아닌가 싶다. 끝나고 나서도 지저분하기 짝이 없는 싸움은 끝나지를 않는다.

이러는 동안 언어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절실히 느꼈다. ‘막말’이라는 단어를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찾아보니 ‘나오는 대로 함부로 하거나 속되게 말함. 또는 그렇게 하는 말’이라고 한다. 그야말로 머리와 가슴을 거치지 않고 입으로 뱉어낸 말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언어는 가슴을 거치고 나오면 공감을 하게 되고 머리를 거치고 나오면 설득을 할 수 있는 무기가 된다.

그러기에 지구 상의 모든 생명체 중에서 유일하게 언어라는 도구로 의사소통을 하는 것이 인간이 아닌가. 

머리와 가슴에서 숙성되지 못 하고 설익은 말을 뱉어내다 보니 다른 사람들에게, 아니 ‘국민’들에게 상처를 주게 된 것이다. 정치적인 상대방을 ‘적’(敵)으로 간주하는 후진적 정치체계가 이성을 상실한 채 어떻게 하면 적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힐까 하는 생각에 골몰하게 만드는가 보다. 

그 결과로 쏟아진 것이 막말이 아니었던가. 결국 정책과 공약은 뒷전이었고 누가 막말을 잘하는가, 누가 또 사고를 치는가에 관심을 가지다 보니 유권자의 선택은 말 그대로 최선도 최악도 차선도 아닌 차악을 선택하게 만들지 않았을까.

우리나라의 현실을 얘기할 때 문화는 이류, 경제는 삼류, 정치는 팔류라고 비아냥거리곤 한다.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내 편이 아니면 무조건 적으로 돌리는 편 가르기가 여전하고 중도라는 말은 있으나 마나 한 말이 돼 버렸다. 

건전한 재야가 없는 정치 현실은 내 편이면 무조건 옳고 상대편이면 무조건 틀렸다는 흑백논리만 무성했다. 토론은 없고 논쟁과 막말이 난무하는 사회, 절대적 성역을 만들어놓고 이견을 용납하지 않는 맹목적 요구가 점점 더 심해간다.

막말이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막말인지 비판인지를 구분하지 않고 우리 편이 하면 건전한 비판이고 상대편이 하면 막말이란다. 그 기준이 모호해지다 보니 국민은 헷갈리기 시작한다.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막말이라는 논리는 도대체 어디서 나온 것인가.

‘다름’을 ‘틀림’으로 간주하는 어리석음을 범하는 정치인들도 너무 많다. 미국의 한 유명 언론인은 하원 의원 중 부도덕한 의원들을 비판하면서 “몇 명의 하원 의원들은 부도덕하다”고 썼다가 엄청난 비난에 직면했다. 그뿐만 아니라 의회는 해당 언론인을 상대로 사과 광고를 요구하는 결의문은 채택하기에 이른다. 결국 그는 신문에 사과 광고를 게재하는데 그 사과 광고의 문장은 “몇 명의 하원 의원들은 도덕적이고 정직하다”였다.

밀(John Stuart Mill)은 “검증되지 않은 견해나 주장은 설사 진리일지라도 맹목적이면 미신”이라고 한 바 있다. 강한 반론을 통해 검증된 견해와 주장만이 설득력이 있게 되는 것이 진정한 토론 문화고 그것이 성숙한 사회의 척도가 된다.

국민은 논쟁이 아닌 토론이 정치 문화의 영역에 자리 잡기를 바란다. 초등학교 교실에서도 보기 어려운 일들이 국회에서 벌어지고 그것이 TV를 통해 생중계되는 현실에서 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가. 

비판적 사고를 통해 의견과 사실, 믿음과 지식을 구분해야 오류를 제거할 수 있고 더욱 성숙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를 만들 수 있는 것이 언어라는 점을 정치인들은 명심해 주기를 바란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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