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고슴도치 이야기’
5월의 ‘고슴도치 이야기’
  •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 승인 2020.04.26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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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24일)에 정부가 발표한 ‘생활 속의 거리두기’ 세부 지침은 코로나19 대응으로 마스크 착용, 1m 이상 간격두기와 비대면, 온라인 활동을 강조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 거리를 두라는 말인데 문득 ‘고슴도치 이야기’가 생각났다. 추운 겨울날. 체온이 그리워진 고슴도치들이 서로 다가갔다.
하지만 고슴도치들이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들의 바늘이 서로를 찔렀고, 그들은 떨어질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추위가 올 때마다 고슴도치들을 다시 다가갔고 서로를 찌르는 같은 일이 반복됐다. 그렇게 모임과 헤어짐을 반복한 고슴도치들은 서로 최소한의 사이를 두는 것이 최고의 수단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이것을 ‘고슴도치의 딜레마(Hedgehog’s Dilemma )’라고 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혼자 살기에는 너무도 춥고 삭막하다.
그래서 서로에게 다가가지만 영락없이 고슴도치 신세가 되기 쉽다. 인간이 가진 가시투성이 본성 때문이다. 우리의 입, 표정, 또는 손과 발이 때로는 가시가 돼 상대방을 찌르고 마는 까닭이다. 그리해 인간은 서로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예의(禮義)를 발견했다. 이 방법을 통해 서로의 온기는 지나치지 않고 적당하게 만족하게 됐으며 서로의 가시에 찔리는 일도 피하게 됐다.
‘고슴도치의 딜레마’는 인간의 관계가 비록 좋은 취지에서 출발하지만 인간 관계란 것이 결국 서로에게 상처를 입힐 수밖에 없다는 점을 설명한다. 그래서 사람과 사람 사이, 서로의 이기심을 견제하기 위해 서로에게 절도를 지키는 것을 권장한다.

▲우리 사회도 예부터 촌수를 정해 가족간의 ‘사이’를 나타내 왔다.
부모와 자식은 1촌(寸)이다. 형제자매는 2촌이다. 3촌, 4촌… 그렇게 서로 모여 ‘사이’를 만들고 체온을 느끼며 관계를 이어나간다. 과거 도량형을 보면 1촌은 1치, 곧 3㎝(3.3㎝)다. 한치 오차도 없다는 말을 쓰듯 작은 거리이지만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이인 부모와 자식 간에도 적정한 ‘사이’를 둔다.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의미다. 또 이 사이가 무시되면 서로 상처를 입을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부부끼리는 정작 촌수가 없어 무촌(無寸)이다. 부부는 ‘사이’가 없다고 볼 것이 아니라 특별히 ‘사이’가 더 좋아야 한다는 의미리라. 아무리 오랜 부부라도 상대방을 존중하고 차이를 인정해줘야 한다는 말이다.

▲제58회 어린이날(5월 5일) 축제와 제48회 어버이날(5월 8일) 기념행사가 취소됐다. 다음 달 18일 예정됐던 제48회 성년의 날 행사도 열리지 않는다.
하지만 5월은 온다. 이날을 기다리는 어버이, 아이들에게 어린이날, 어버이날 행사가 취소됐다고 “올해는 눈 딱 감으시라” 할 수는 없는 일.
문제는 양가 부모를 찾아뵙는 일부터 아이들까지 돈 들어갈 일이 만만치가 않다는 점이다. 일자리를 잃은 가장들의 눈자리가 ‘휑’하니 깊어졌고 부부들이 서로 다투고 상처를 입는 일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창밖에는 신록이다. 이 아픈 봄이 어찌 이리 아름다운가! 봄이 짙어지는 소리는 왜 이렇게 낭낭한가.
하늘과 땅, 천지(天地)가 좋은 사이로 만나는 때문이리라. 때로는 가깝게 때로는 멀게 천지간에 그렇게 조화롭게 사이를 두고 자연은 흐른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도 이 자연의 조화처럼 사이가 좋아야 한다. 서로 찔리지 않게, 아프지 않게 체온을 나누는 사이. 이것이 우리가 만들어나가야 할 세상이다.
실제로 고슴도치들은 바늘이 없는 서로의 머리만을 맞대고 체온을 유지하거나 수면을 취한다.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boo4960@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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