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체면 문화, 스몰 럭셔리
또 하나의 체면 문화, 스몰 럭셔리
  • 뉴제주일보
  • 승인 2020.04.22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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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영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KBII 한국뷰티산업연구소 수석연구원)

사치란 인류학적으로 원래 인간의 것이었다는 ‘사치인간(Homo Luxus)’의 예처럼 사치에 대한 욕망은 인간 본성의 일부라 할 수 있다. 과거 역사적으로 볼 때 상황만 허락된다면 인간은 자기 자신을 주장하고자 하였으며, 다른 인간들로부터 사회·문화적으로 인정받길 원했다.

스몰 럭셔리, 즉 작은 사치라는 개념이 불황을 근거로 하여 또 하나의 소비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100년 전 ‘보기에 값비싸고 호화로움’이란 사전적 뜻을 지닌 럭셔리(Luxury)는 왕실 귀족과 부유층의 라이프스타일이었으나 오늘날은 맥도날드 햄버거처럼 누구나 손쉽게 손에 쥘 수 있다는 ‘맥럭셔리’는 이미 대중화되었고, ‘럭셔리제너레이션(Luxury Generation)’의 개념은 다시 부각되며 변화를 지속 하고 있다.

‘스몰 럭셔리’는 고가의 명품 외제차나 명품브랜드 의류·가방을 구매하기 어려운 소비자가 동일한 만족감을 얻기 위해 상대적으로 저가의 명품을 구입하는 현상이다. 명품 립스틱과 같은 작은 규모의 고급 소비재를 구매함으로써 명품 백 같은 비싼 명품을 소비하는 것과 같은 만족감을 느끼는 것이다. 사실 스몰 럭셔리는 포미족에서 ‘고가’가 극대화된 소비문화라고 할 수 있다. 여러 분야 중 각자가 가치 있다고 믿는 분야에 대해 작은 사치를 부리는 현상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경제가 어려우면 소비가 줄어든다. 하지만 경제가 어려운 가운데 립스틱, 미니스커트 등의 화려한 사치품의 소비는 증가한다. 이는 1930년대 미국의 대공황 시절, 경제난으로 전체적인 소비가 줄었지만 저가 상품인 립스틱 매출은 상승했다. 이런 특이한 현상을 경제학자들은 ‘립스틱 효과’라고 명명했으며 이러한 현상은 사실 여성의 심리를 기반으로 경기가 불황이 되면 실업률이 증가하고, 그에 따른 안정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안정을 위하여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남성을 만나기 위해 외모를 향상시킬 수 있는 화장품과 패션 등의 소비가 증가한다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개념이 바로 작은 사치이다. 작은 사치는 일종의 립스틱 효과가 확대된 개념이다. 불황에서 소비가 증가했던 과거 립스틱 효과가 패션·뷰티 사치품에 한정해 사용됐다면, 작은 사치는 프리미엄 세제, 유모차 등 생활용품까지 범위가 확대된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작은 사치를 대표하는 사례로 바로 점심은 저렴한 2~3000원 김밥을 먹으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커피에는 5~6000원을 서슴없이 투자하는 ‘포미’(FORME)족이다. 건강(For Health), 싱글족(One), 여가(Recreation), 편의(More convenient), 고가(Expensive)의 영어 알파벳 앞 글자를 따서 만들어졌다. ‘나만을 위한 작은 사치’를 추구하는 가치소비문화라는 점에서 포미족과 스몰 럭셔리 소비문화는 많이 닮아 있다.

포미족은 자신이 가치를 두는 제품이 다소 비싸더라도 과감히 투자하는 소비 행태로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포미족의 소비 행태는 사치라는 느낌을 주는 기존의 된장남, 된장녀라 불리는 소비자들의 과시형 소비 행태와 달리 자기 만족형 소비 행태를 가졌다는 차이가 있다. 이와 비슷한 가치소비의 형태로 일컫는 가치소비를 하는 또 하나의 신조어는 어번 그래니(Urban granny)족이라고 하여, 나를 위한 소비를 하기 시작하는 5060대 여성들을 지칭한다. 이들은 젊은 시절에 가족을 위해 헌신하느라 소비를 즐기지 못했지만, 점차 경제적, 시간적 여유가 생겨 과거에 하지 못했던 자기를 위한 소비를 즐기는 세대이다. 하지만 어번 그래니족은 가치소비라는 공통점이 존재하지만, 포미족과는 달리 경제력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차이점이 존재한다.

세계적으로 장기불황이 고착화되면서 가치지향 소비문화가 생겨났다. 자신에게 가치 있다고 생각되는 분야에 대해서는 큰 대가를 지불해서라도 취미생활로 향유하는 소비패턴이다. 무작정 절약하는 생활이 더 나은 미래를 보장하지 않는 현실이 이어지다보니 소비패턴에도 변화가 생긴 것이다.

해외여행을 다니면서 세련된 공간을 경험할 기회가 늘었고, SNS를 통해서도 멋진 인테리어를 접할 일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주로 젊은 층들 사이에서의 문화로 자리 잡은 이러한 소비문화는 장기 불황과 청년 실업으로 인하여 불안한 마음을 가지는 소비자들이 소소한 미용용품이나, 커피, 립밤 등의 저가 화장품 등을 구매하면서 극적으로 과장하는 행위라 볼 수 있다.

이러한 소비행태의 기반에는 ‘불황’이 자리한다. 불황 때문에 제한된 소비를 해야 한다는 인식이 사회전반으로 퍼져 나가면서 절약하는 삶에 지친 사람들이 잠시라도 기분전환을 할 수 있는 소비 생활을 찾게 되었다. 이로 인해 립스틱과 같은 저렴한 가격으로도 기분을 낼 수 있는 제품군들의 소비가 증가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생필품은 아니지만 뭔가 사치스러운 느낌을 주면서도 가격이 합리적이어서 만족감을 가지고 소비할 수 있는, 일종의 작은 사치가 새로운 소비 트렌드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자신을 중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남들의 시선을 굉장히 많이 의식하면서 유행을 좇는 것으로 남들은 다 가지고 있는데 나도 하나쯤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체면 문화로 자칫 빠져들게 되어 우리경제에 독이 될 수 있다는 걱정 어린 시선도 한번쯤은 의식해 볼 만 하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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