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었다는 사실
늙었다는 사실
  • 뉴제주일보
  • 승인 2020.04.21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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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훈식 시인

늙었다고 자탄할 때부터 대책 없이 늙는다는 말에 아직은 늙지 않았다고 행동하다가 곤혹을 치르고 있다.

옛날에 쓰던 아령을 들다가 어깨근육이 아작 났다. 왼쪽 어깨근육이 심하게 앓고 있다. 앓고 있다는 표현은 아픔을 견디고 있다는 뜻이다. 몸이 좌우대칭으로 돼 있으므로 운동기구를 들어도 양쪽 균형을 맞춰야 하는데 왼쪽으로만 무거운 아령을 들었다가 사단이 난 거다. 안 그래도 늙은 파충류 몰골이라 무식한 노인으로 보여서 괄시 받는 경우도 허다하다.

노년이라도 60대와 70, 80대와 90대가 고통의 무게나 통찰이 다르겠지만 아무튼 늙었다는 것은 익었다는 것과 다르다. 사실은 썩고 있다는 범주에 놓아야 한다. 버스를 타도 눈치가 보인다. 노인 특유의 냄새가 나는 걸 알기 때문이다. 같은 붕어빵을 먹어도 공연히 상한 것을 먹는 걸로 보이는 걸까? 옆에 앉기만 해도 비위가 쓰이는가? 늙었지만 깔끔하게 치장해서 외출해도 맵시가 별로다. 그나마 혐오감이 없으면 다행이고.

인간은 피조물이라서 피동의 한계가 결론일진데 그걸 부정하고 싶어서 존경하는 노시인의 영전에 헌정시를 쓴 적이 있다. 제목은 길 없는 길이다.

강 상류에서 천연복숭아 떠내려 온다 / 살아있는 귀신이 휘청휘청 걸어간다 /

땀을 씻는 젊은이 등 뒤에서 말을 건다 / 노형, 길이 있습니까? 같이 갑시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고 하던데 저승엔 천연복숭아가 익고 있는가? 죽음이 삶의 완성인지, 절망인지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누구의 마지막도 장엄한 슬픔이기에 하릴없이 떠나는 사실에 인생의 답을 구하고 싶어서 썼다.

열심히 살았다는 유품으로 메달이나 상패, 공로패도 당사자가 없으면 번지 없는 주막 같은 신세가 돼 버려지거나 파묻어 버리기 십상이다. 더구나 평생 업적으로 남긴 학문이나 예술작품도 후대의 천재적인 능력에 의해 하루아침에 무용지물로 전락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것은 신기록은 깨지기 위해 존재하는 경우와 같은 맥락이다. 그러니까 불후의 명작을 기초로 배우는 후손들의 일취월장은 당연한 이치다. 그러므로 내가 시를 1000편이나 남긴다 한들 수순은 가파른 망각이다.

에디슨의 어록으로 천재는 99%의 땀과 1%의 영감(靈感)으로 구성된다는 뜻은 1%의 영감이 없으면 99%의 땀은 헛고생이라는 거다. 사자성어로는 화룡점정(畵龍點睛)과 같은데 용을 다 그려놓아도 눈을 그리지 아니하면 말짱 꽝이라는 말이다.

늙었으니 낙엽처럼 조용하게 떠나시라고 은근하게 괄시를 받다보니 탐진치(貪瞋痴)의 뜻도 실천이 가능해 졌다. 욕심내면 크게 화를 입고 분노가 치미는 어리석음을 뉘우쳐야 하는 지경에 이른다는 것을.

오늘 도를 깨우치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했다는데 이제야 알 것 같은 인생, 그동안 청춘을 낭비한 죄가 너무 커서 살아갈수록 아프고 버거워서 몰명다리 신세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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