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의 시원(始原) 에티오피아
커피의 시원(始原) 에티오피아
  • 뉴제주일보
  • 승인 2020.04.14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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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대 월간커피 발행인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 남서쪽으로 차로 10시간 이상 가야 하는 초체(Choche) 언덕은 커피를 처음 발견했다는 칼디(Kaldi) 전설의 배경이 되는 곳이다.  

여러 해 전 커피의 고향 에티오피아를 방문하게 됐다. 당시에는 에티오피아로 직접 들어가는 항공편이 없어 두바이나 다른 곳에서 환승해야 만 갈 수 있었던 머나먼 길이었다. 하지만 긴 여정임에도 커피의 시원(始原)인 그 땅을 밟는 건 내게 매우 의미 있고 행복한 일이었다. 

에티오피아도 그렇지만 특히 짐마(Djim ma)의 초체는 커피를 직업으로 삼는 사람들에게는 꼭 가보고 싶은 커피의 시작점이다. 그때 나는 이곳에서 칼디의 전설 속으로 들어가 커피의 첫 발견이 어떤 느낌이었는지 몸소 체험하는 기회를 만끽할 수 있었다.

당시 우리를 안내한 늙수그레한 커피 농부는 초체가 얼마나 커피에 깊게 관여돼 있는 지역인지 과장된 몸짓으로 열심히 설명을 시작한다. 이게 ‘칼디의 발자국’이고 이것은 ‘염소가 뛰어다닌 흔적’이라며 그는 우리를 전설 속으로 끌어들였다. 그 바람에 나는 어느새 칼디가 살았던 기원전 6세기로 시간 이동을 시작한다.

얌전하게 풀을 뜯던 염소들이 갑자기 춤을 추기 시작한다. 신이 나서 자기들끼리 머리를 맞대 밀기도 하고 껑충껑충 뜀을 뛰기도 한다. 평소와 달리 유쾌하고 활기 차 보이는 염소들을 지켜보는 목동 칼디는 도저히 까닭을 알 수가 없다. 무슨 일일까. 끊임없이 그 녀석들의 움직임을 쫓던 칼디는 주변에 널리 퍼져있는 키 큰 나무에 흐드러지게 달린 붉은 열매를 먹는 염소를 발견했다. 열매를 손으로 따서 입으로 가져갔다. 우물거리면서 그 열매의 과피를 벗겨 내니 단맛이 풍성하게 입에 괸다. 동시에 입속에 남아있는 딱딱한 무엇이 느껴져 밖으로 뱉어냈다. 점액질의 무실리지(Mucilage)로 싸여있는 녹색의 씨앗을 발견하는 순간이다. 바로 그린빈(Greenbeans)이라 불리는 커피였다.

“이곳의 커피나무들은 수령이 꽤 오래된 것들입니다.” 농부가 에티오피아 오로모족의 현지어로 얘기하면 안내를 맡은 가이드가 다시 영어로 통역한다. 자신은 이 지역에서 50여 년을 살아왔고 그래서 이곳의 형편과 내용을 아주 잘 안다고 했다. 커피나무 굵기나 물리적 성상이 여느 커피나무와는 확연히 달라 그의 말에 신뢰가 간다. 

주변을 돌아보니 모든 커피나무가 꽤 오랜 풍상을 겪어 온 모습이다. 줄기에서 다시 커피가 자라고 나무의 밑동을 잘라낸 자리엔 다시 커피나무가 싹을 낸다. 나무마다 빨갛게 익은 커피체리가 드문드문 달려있긴 하지만 노산(老産)이어서 그런지 열매가 풍성하진 않다. 커피체리를 따서 입으로 가져간다. 단맛이 고르게 입안을 감돈다. 갑자기 나는 칼디가 됐다. 

들판 중간에 회백색과 갈색이 불규칙하게 섞인 암반이 성글게 자리 잡고 있고 86개 부족 중 하나인 오로모족의 대통령이 세웠다는 아라비카 커피의 고향(Birth place of Arabica Coffee)이란 표시석도 한눈에 들어온다. 주변을 둘러보니 커피나무 자생지로는 매우 적절한 햇살과 공기가 그곳을 가로지른다. 그곳의 토질 또한 윤기가 흐르는 게 땅이 걸고 기름진 듯싶다. 이곳이 칼디가 커피를 발견했다는 바로 그곳이다.

에티오피아를 갈 때마다 느끼는 감정이지만 다른 나라 커피산지와는 달리 그곳은 묘한 매력이 있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첫 방문 이후에도 여러 차례 에티오피아를 다녀오게 됐다. 커피 재배환경이 어느 곳보다 탁월한 에티오피아는 토양과 기후도 알맞은 데다가 커피 농장이 자리 잡은 재배지의 높은 고도가 더욱 특별한 커피를 만들어준다. 

그래서 화사하면서도 감칠맛 나고 기분 좋은 적당한 신맛이 받쳐주는 커피는 전 세계 커피애호가들에게 호평을 받는다. 

커피 이벤트가 열리는 나라를 방문할 때마다 만나게 되는 해외 커피전문가들에게 어느 나라 산지의 커피를 가장 좋아하는지를 묻곤 했다. 대부분 에티오피아 커피가 가장 매력적이라고 답한다. 세계 커피산업에서 에티오피아의 존재감이 가장 돋보이는 이유다. 

올해는 커피 꽃 개화기인 5~6월쯤에 맞춰 에티오피아 방문 계획을 세웠었지만 코로나19로 모처럼의 커피 여정을 잠시 멈춰야 한다. 이때가 아니면 꽃을 제대로 볼 수 없으니 어쩔 수 없이 내년을 기약할 수밖에 없게 됐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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