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싸움에 대한 고찰
부부싸움에 대한 고찰
  • 뉴제주일보
  • 승인 2020.02.25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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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훈식 시인

첫 눈에 반하여 평생을 함께 하겠다고 천지신명에게 맹세하였으니 열심히 살아도 모자랄 판에 거친 파도가 유능한 어부를 만든다고 부부싸움으로 집안에 풍파를 일으키면 쓰겠는가.

서로의 입장에서 얼마나 미운지 웃어도 불쌍헌 건 이녁 각시여했던 금과옥조도 사라지고 못 해도 좋으니까 아프지나 맙써했던 너그러움이 어리석다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아무리 부부싸움이 칼로 물 베기라고 하지만 험악한 표정을 지으며 아침 반찬으로 꺼낸 고등어 대가리를 토막 칠 때는 그 자리를 피하는 게 상책이다. 그러므로 부부싸움은 비상사태이다.

자식들에게 사태의 발단을 서로 유리하게 설명했더니 자식들은 하도 싸우니까 지겹다고 짜증내면서 편 가르려 하지 말고 화해를 하든가, 이혼을 하든가 하루 바삐 난관을 타개해주기 바란다고 했다.

그래도 같은 방을 쓰는 젊은 날은 남자가 거실에 잠자리를 꾸리게 되는데 정신적으로 불안하고 육체적으로는 힘이 넘쳐 우여곡절로 안방에 침투하고는, 이십 년을 함께 산 아내를 강간해야 하느냐는 절규로 원한을 녹여내고 다시 쾌청한 날씨를 맞이했던 세월도 있지만 오십년이 다 되도록 살면서도 부부싸움을 한다는 용맹이 놀라울 따름이다.

자주 보는 거울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라. 늙은 거북이 같은 몰골인데 무슨 기십이 살아있어서 너란 인간은, 나란 인간은 하는가 말이다.

모진 세월에 부모님이 돌아가셨으니 큰 일은 다 한 셈이고, 장인어른도 장모님도 돌아가셨으니 그 또한 할 일도 더러 한 셈이다. 이제 아이들도 결혼해서 다들 따로 살고 있으니 우리만 남았다. 우리끼리 무엇을 먹든 어디를 놀러가든 심심하거나 심각하면 싸워도 된다. 싸우고 이혼하거나 재혼해도 말릴 사람 없다는 사실이다. 요약하면 늙은 내 곁엔 평생 동지 그대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부터라도 아내와 귀한 시간을 함께 보내겠다고 자주 말을 걸고 싱크대까지 따라다니며 애교를 펼수록 남편을 귀찮아하는 줄을 어이 모르는가. 아내도 무릎이 성치 못 하여 하루 세끼 차려먹는 남편이 얼마나 얄미우면 삼식이 세끼라고 하겠는가.

매사 유념할 일이다. 노인의 특유한 고린내를 제거하기 위하여 목욕 자주 해야 할 것이고, 음식을 먹으면서 흘리지 말아야 하며, 소변 볼 때는 앉아서 봐야 한다. 오줌발이 약하니까 바지를 적시면 낭패다. 의상을 협찬으로 받은 인기스타 중에 그런 남자도 많다고 한다.

평생 고집을 꺾어보려고 할수록 중요한 것은 생활력이다. 돈 없으면 집에 가서 빈대떡이라도 부쳐먹으라고? 천만의 말씀이다.

병들어 누워도 집을 지키고 있으니까 마음이 든든하다는 여심은 위선인가? 중년에 세상 떠난 아내 장례식을 치르고 나서 옥상에서 크게 웃었다는 남자의 마음은 진실인가?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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