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어머니
  • 제주일보
  • 승인 2020.02.11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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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미경 수필가

겨울 한 복판, 이른 아침에 어머니는 아버지를 의지하여 병원을 찾아 나섰다. 잦은 병환에 시달리다보니 어느 병원이 효과가 있다고 하면 좋다는 병원을 찾아 나서는 일이 다반사다.

밤새 무릎 통증으로 고생하다가 시내에 위치한 통증 외과를 찾아 나선 길이다. 진료가 끝나고 집에 오실 시간임에도 소식이 없자 전화를 하였다. 버스로 오는 길에 그만 길을 잃었다고 한다. 내릴 곳에서 우물쭈물하다 그만 몇 정류소를 지나쳤는지 모르겠다는 말에 나 또한 어디쯤 인지도 속수무책 방향을 가늠할 수 없었지만 서둘러 차를 몰고 부모님이 내릴만한 곳을 찾아 이동했다.

날씨도 춥고 진눈깨비마저 흩날리는데 길바닥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을 부모님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리다.

머릿속에선 온갖 생각들이 꼬리를 문다.

나이가 들면 거꾸로 아이가 된다는 말을 상기하며, 마치 어린 자식이 길을 잃고 밖에서 떨고 있을 상황을 생각하며 발 빠르게 움직여야 했다. 갑작스러운 추위에 감기라도 걸리게 되면 오히려 안 나서니만 못하다는 생각에 서둘러 골목골목을 찾아 헤매었다. 한참을 그렇게 찾고 있는데, 저만치 지팡이에 의지한 채 아버지의 부축을 받으며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순간 왈칵 눈물이 쏟아지려는 것을 겨우 참았다.

세월이 가면 모든 것이 낡게 마련이라는 것을 왜 모르겠는가, 예전에 강한 모습은 온데 간 데 없고 쇠약해진 노모의 모습이다. 유난히 자존심이 강해 어느 누구에게도 신세지려 하거나 도움을 청하는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셨는데, 세월은 무심하게도 어머니를 이렇게 만들어 놓았다.

우선 차 안을 따뜻한 열기로 채운 후 부모님을 향해 달려갔다. 한 시간이 넘게 불편한 몸으로 길가를 서성였으니 손등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순간 부아가 치밀었다. 내가 모시러 간다는 말을 수없이 하였거늘 행여 자식들 귀찮게 하는 것 같아 쉽게 찾을 수 있다는 생각에 아버지를 의지삼아 버스에 올랐다는 것이다.

진료가 끝나자 부모님을 집으로 모셔다 드리고 돌아왔다. 가슴에 돌덩이를 얹어 놓은 듯 답답하다. 세월이 야속하다는 생각에 이유 없이 서글퍼졌다. 늙어버린 어머니가 너무 가여웠다.

침대에 엎드려 소리 없이 눈물을 훔쳤다. 때마침 남편이 들어왔다. 울고 있는 모습에 당황한 건지 아무 말없이 지켜만 보고 있다. 아무리 착한 남편이라 해도 늙고 병들어가는 부모님 앞에선 별다른 방법이 없는 것을, 위로 대신 내 어깨를 살며시 토닥여준다.

이제야 자식들 모두 출가시켜 놓았으니 편안한 마음으로 고운 옷 입고 세상 구경하며 원하는 삶을 사시길 원했는데 무정한 세월이 야속하다. 늘그막이라 편히 지내셔도 만족함이 없을텐데, 잦은 병치레는 젊었을 때 온갖 고생을 한 결과이다.

당신 몸 부서져도 자식 위해서라면 괜찮다, 괜찮다 하시던 심정을 이제서야 알 것 같다. 나도 자식 낳고 나서야 진정 어머니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어머니가 아니면 아무도 흉내낼 수 없는 이름, 바로 어머니시다.

항상 큰 바위처럼 영원히 지켜 주실 것만 같은 착각속에 살았다.

긴 병에 효자 없다고 아버지가 무심결에 던진 말이 생각난다. 자식들이야 어쩌다 한 번 돌보면 그만이지만 옆에서 매일 시중드는 아버지 입장은 어떻겠느냐며 푸념섞인 넋두리가 이어진다.

오랜 병환에 힘들 법도 한데 투덜거리며 말싸움 하는 걸 봐서는 아직도 사랑의 에너지가 넘친다. 고운 정보다 미운 정이 깊다고 하는데 아버지와 어머니는 분명 천생연분임에 틀림없다.

어찌됐든 어머니 곁에 아버지가 계셔서 안심이다.

 

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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