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쥐가 시집가던 날
어느 쥐가 시집가던 날
  • 뉴제주일보
  • 승인 2020.01.22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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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 전 서울신문 편집부국장·논설위원

설이 지나면 음력으로 한 해가 시작되는 2월이다. 쥐띠해의 시작인 것이다. 쥐띠해가 12지간에서 처음 나오는 것은 낡은 것을 마감하고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다산과 다복을 상징한다.

그럴 것이 쥐의 임신 기간이 21일로 한쌍의 쥐가 10마리씩 1년에 10번의 새끼를 낳는다고 생각하면 번식력은 실로 대단하다.

사람에게 쥐는 결코 유익한 동물이 아니지만 얄밉더라도 늘 같이 있거나 같이 살아가야 하는 동물이다. 자연계의 일원으로서의 쥐는 나름대로 그 존재 의의가 자못 크다.

옛부터 쥐띠 해는 풍요와 희망, 기회의 해로 여겨 왔다. 쥐해에 태어난 사람은 식복(食福)과 함께 좋은 운명을 타고 났다고들 한다. 또 위험을 미리 감지하는 본능이 있고, 어려운 여건에서도 살아남는 근면한 동물이다. 특히 쥐는 인간의 건강을 위해 실험용으로 희생되고 있다. 여기에서 흥미로운 얘기 한토막, 시집가는 쥐의 얘기다.

아주 아주 먼 옛날에 한쌍의 나이 지긋한 부부가 그늘지고 습한 추운 동굴에 살고 있었다. 부부 사이에는 꽃같이 고운 딸이 하루하루 자라고 있었다. 부부는 자식 딸을 잘 시집 보내기로 하고 신랑을 구하러 집을 나섰다.

막 나가보니 하늘에 떡 버티고 있는 태양이 있었다. 보아 하니 태양은 세상에서 가장 강대한 것이었다. 어떤 어두움도 모두 태양의 빛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딸을 태양에게 시집보내면 그게 바로 광명에게 시집 보내는 것이 아닌가. 태양은 쥐 부부의 청을 듣고 이마를 찌푸리며 말하기를 “노인양반 나는 당신들이 상상하는 것처럼 너무 강하지 않습니다. 검은 구름이 저의 빛을 가릴 수 있습니다.”

노부부는 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검은 구름이 있는 곳에 가서 혼인 이야기를 했다. 검은 구름이 쓴 웃음 지으며 말했다. “저에게 빛을 가릴 수 있는 역량이 있기는 하지만 살짝 부는 바람만으로도 저를 흩어버릴 수 있습니다.”

노부부는 깊이 생각한 끝에 검은 구름을 누를 수 있는 바람을 찾았다. 바람은 웃으며 말하기를 “제가 검은 구름을 불어 날릴 수는 있지만 담이 이를 막아버립니다.” 노부부는 또 담을 찾았다.
담이 그들을 보자 질린 표정이었다. 그래서 하는 말이 “이 세상에서 가장 겁내는 것이 쥐입니다. 아무리 견고한 벽이라도 쥐가 구멍을 내는데는 당해낼 수가 없이 무너져 내립니다.”

노부부는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기뻐하며 자기들 쥐가 가장 역량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노부부는 우리들 쥐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누군가를 의논했다. 맞다. 예로부터 쥐는 고양이를 두려워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쥐 부부는 고양이를 찾아가 자기 딸을 고양이에게 시집 보내겠다고 말했다. 고양이가 크게 웃으며 흔쾌히 승낙했다. 시집 보내는 날 쥐들은 근사한 의식으로 가장 아름다운 혼례식을 올렸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났다. 고양이들이 뒤에서 튀어 나와 한 입에 신부를 잡아먹어버렸다. 쥐 시집보내기 전설은 중국에서 유행했다. 지방에 따라 쥐 시집 보내는 날짜가 좀 다르다. 중국 강남 일대의 전설에는 쥐는 사람을 해치고 불길하기 때문에 음력 12월 30일 밤에 쥐를 시집 보내어 그 해의 평안함과 길상을 확보하고자 했다.

상하이 지역에서는 쥐 시집 보내기를 1월 16일에 한다. 이날 밤 집집마다 깨사탕을 볶는데 쥐들의 결혼식용 사탕인 것이다. 북방에서는 1월 15일에 한다. 이날 밤 집집마다 불을 켜지 않고 온 가족이 모두 온돌에 모여 소리내지 않고 어둠 속에서 콩볶은 것을 먹었다.

콩을 볶아먹는 것은 와작와작 하는 소리로 쥐가 혼인하는 데 축포를 쏘아대는 것이다. 시집가는 쥐 외에도 해안도서 지방에서 섬기는 수호신의 하나가 쥐이다. 전남의 비금도 월포리 당과 우이도 진리, 대촌리, 경치리, 서소우이도의 당은 쥐신을 모신 대표적인 예이다. 또한 파선이나 난선을 미리 쥐신이 꿈으로 알려주거나 암시해 준다고 믿었다. 어쨌거 다산 다복. 기회의 한 해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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