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가방 안에 무엇이 들었나
여행가방 안에 무엇이 들었나
  • 제주일보
  • 승인 2020.01.0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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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옥 도서출판 장천 대표

핀란드라는 나라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가 본 적도 없고 그 쪽의 영화나 문학작품도 친숙하게 떠오르는 게 없다.

핀란디아라는 유명한 음악과 자작나무에서 원료를 추출했다는 껌 정도는 아니까 전혀 모르지는 않는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나라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라는 소개에 끌렸을 때는 뭔가 핀란드의 멋진 풍광과 우아한 거리가 등장할 거라는 기대가 컸을 것이다.

하지만 막상 시작된 영화의 화면은 어느 나라에도 있을 법한 한적한 주택가의 작은 식당에 대부분 고정됐다. 몇 년 전에 본 일본 영화 얘기다.

유럽을 애착한다는 일본 사람들에게 핀란드는 이미 유명 여행지인지 젊은 여자 혼자 꾸려가는 일본 가정식 식당에는 여행 왔다 머물게 되는 두 명의 여성이 등장한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물론 동네의 핀란드 아줌마들까지 모두 매력이 넘치지만 그 두 명 중 한 명이 인상적이었다.

작은 몸매에 안경을 낀 그녀는 표정이나 옷차림에서부터 절제되고 예의 바르고 엄격하게 보인다.

그런 그녀가 핀란드에 도착하자마자 여행가방을 찾아 헤맨다. 비행 도중 무엇이 잘못됐는지 가방이 주인의 손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다.

여기저기 허탕만 치다가 마침내 가방을 찾은 그녀는 반가운 마음에 가방을 연다. 이제 일본에서부터 소중하게 꾸려온 옷가지며 신발이며 이런저런 필요한 것들을 마주할 순간이다.

그런데 세상에. 그 안에는 생각지도 못 한 것들이 가득 차 있었다. 황금빛깔과 향기를 잔뜩 내뿜고 있는 그것은, 버섯이었다.

그 장면에서 영화의 인물들만큼이나 관객들도 놀랐다. 탄성이 나오기도 했다.

몇 날 며칠을 노심초사 찾아 헤맨 것을 비웃기라도 하듯 너무나 비현실적이었다.

예상치 못 한 반전도 반전이지만 금은보화보다 더 화려한 그 버섯의 자태가 제기할 수 있는 이의를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그래, 어째서인지는 모르지만 물건이 바뀔 수도 있고 하필 그 물건이 버섯일 수도 있지, 판타지도 아닌 영화에서 판타지적인 그 장면이 튈 수도 있었지만 이렇게 너그럽게 넘어갈 수 있었다.

황금빛이 찬란한 그 버섯은 귀하고 비싼 것인가 짐작했지만 찾아보니 핀란드에서는 가장 흔한 꾀꼬리버섯이라고 한다.

내친김에 좀 더 찾아보니 숲이 많고 깊은 핀란드에서는 버섯이나 베리 류는 누구나 맘껏 따갈 수 있다고 한다.

그 숲이 사유지라도 예외가 없다고 하니 모두에게 주어지는 자연의 선물인 셈이다. 그래서 그런지 핀란드 사람들은 버섯도감을 들고 숲속 하이킹을 즐긴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되찾은 여행가방 안에 가득 찬 그 버섯은 특이한 것도, 대단한 것도 아니다. 핀란드에서라면 그저 그런 것일 뿐이다.

여행의 필수품을 대신할 수 없다는 것만이 유감이지만 막상 여행의 필수품이란 게 무엇인가. 기껏해야 몇 벌의 옷가지, 신발, 일기장 같은 게 아닐까. 여행에서 진정 소중한 것은 그런 것이 아니다.

떠나온 곳의 흔적들을 잔뜩 짊어지고 떠나는 일은 진짜 여행이 아니다. 그것들은 도착하는 순간 잃어버려야 마땅한 것이고 도착한 곳에서 만나는 것들로 대체돼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유별나거나 대단한 것이 아니다. 모두에게 주어지는, 말하자면 핀란드 버섯 같은 것이 가득 채워져야 하는 것이다. 그 것이야말로 찬연한 빛과 향기를 내뿜는다는 것을 영화의 장면은 말해주는 듯하다.

기실 우리 모두의 인생은 여행가방 하나씩을 받아들고 떠나는 여정일 것이다.

행여나 누더기를 소중한 것인 양 열심히 챙기고, 그 것을 잃어버릴까 노심초사 헤매느라 찬연한 빛과 향기를 내뿜는 버섯을 잊고 사는 것은 아닌지 내 발길을 돌아보는 요즈음이다.

제주일보  webmaster@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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