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서 항일 활동 선인들 자취 그대로…
일본서 항일 활동 선인들 자취 그대로…
  • 뉴제주일보
  • 승인 2020.01.02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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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안유지법기소자명부(1932)

1928~1932년 체포 조선인들 명부
제주 출신 김문준·강문석 등 눈길
치안유지법기소자명부(1932 제주 항일기념관 소장) 표지.
치안유지법기소자명부(1932 제주 항일기념관 소장) 표지.

해마다 10월 말에 도쿄 간다(神田)고서축제에 참가할 때면 늘 뭔가를 만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갖게 된다. 조그만 헌책방을 운영하면서 좋은 자료지만 가격이 비싼 건 언감생심(焉敢生心) 바랄 수도 없지만, 이른 바 가성비(價性比)가 높은 자료들은 부지런히 발품을 팔면 언제나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항상 싼 것만 찾는 건 아니다. 경제적인 부담에 늘 저렴하면서도 가치가 높은 것들을 우선 찾지만 무리를 한 경우도 몇 번 있었다.

몇 년 전 낡은 고서가 무더기로 놓여 있는 한 부스에 들렀다가 균일가로 파는 십여 권을 골라 셈을 치루는 데 주인장 바로 옆에 놓여 있는 작은 종이 상자에 눈길이 갔다. 다른 책들은 알몸으로 전시되어 있는 데 상자 안에 있는 놈들은 비닐로 잘 포장되어 있었다. 맨 위에 있는 책은 그다지 관심 가는 책이 아니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들춰보니 가슴을 콩당콩당 뛰게 만드는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맘에 드는 제목에 끌려 내용을 살펴보니 꼭 우리나라로 데려오고 싶은 자료였다. 그런데 항상 그렇지만 빈약한 주머니 사정이 문제다. 더구나 출장길 끝물이라 내가 가진 돈으로는 턱도 없는 가격대였지만, 그 분야 전공자로 박물관에 있는 친구의 가격은 비싸도 그런 자료는 무조건 들여오라는 공갈(?)에 무리수를 두고 말았다.

그 자료가 바로 치안유지법기소자명부(治安維持法起訴者名簿)이다. 1928년부터 19322월까지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체포되어 기소된 사람들을 19327월에 조사해서 명부를 만들고 철필로 긁어 등사해 만든 프린트물이다. 이 명부에는 어찌 보면 당연하게도 당시 일본에서 활동하던 다수의 조선인이 등장한다.

그 중에서도 192911월부터 19302월 검거(檢擧)를 중심으로 716일까지의 사건을 수록한 2·26사건에 조선인들의 이름이 집중된다. 그 사건의 도쿄(東京)편에는 김수암(金水岩), 김쌍암(金雙岩), 정용삼(鄭龍三)이 보이고, 19302월 삐라 살포 건에는 이의석(李義錫), 김두용(金斗鎔), 임철섭(林徹燮) 등이 포함되어 있다.

오사카편 김문준(金文準 1894~1936) 부분(확대).
오사카편 김문준(金文準 1894~1936) 부분(확대).

1931530일부터 공판이 개시된 같은 사건의 오사카(大阪)편에는 우리 제주와 관련 있는 인물이 등장한다. 제주 조천 출신의 독립운동가로 200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追敍)된 김문준(金文準 1894~1936)과 서귀포 대정 출신의 독립 운동가이자 사회주의 운동가로 4·3 당시 무장대 총사령관 김달삼(金達三 본명 이승진)의 장인인 강문석(姜文錫 1906~?)이 그들이다.

19301024일 일본 공산당의 공판투쟁을 지원하기 위해 일어났던 교토(京都)형무소습격사건 관련자로는 김린이(金麟伊)와 신동공(伸銅工)인 김성석(金盛錫), 최봉수(崔鳳秀), 배갑룡(裴甲龍), 김용수(金容洙) 등이 보인다.

이 치안유지법은 천황제나 사유재산제를 부정하는 운동을 단속하는 것을 목적으로 1925년 제정된 것으로 초기에는 공산주의나 사회주의, 노동운동에서 나중에는 자유주의나 시민운동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표현의 자유와 결사의 자유를 탄압하는 데 이용되었다.

그 엄중하던 시절 그것도 일본 본토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활동했던 우리 선인들의 자취가 그대로 남아 있는 자료라 그 가치가 높다 하겠다.

교토(京都)형무소습격사건 부분.
교토(京都)형무소습격사건 부분.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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