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8~1932년 체포 조선인들 명부
제주 출신 김문준·강문석 등 눈길
해마다 10월 말에 도쿄 간다(神田)고서축제에 참가할 때면 늘 뭔가를 만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갖게 된다. 조그만 헌책방을 운영하면서 좋은 자료지만 가격이 비싼 건 언감생심(焉敢生心) 바랄 수도 없지만, 이른 바 가성비(價性比)가 높은 자료들은 부지런히 발품을 팔면 언제나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항상 싼 것만 찾는 건 아니다. 경제적인 부담에 늘 ‘저렴하면서도 가치가 높은 것’들을 우선 찾지만 ‘무리’를 한 경우도 몇 번 있었다.
몇 년 전 낡은 고서가 무더기로 놓여 있는 한 부스에 들렀다가 균일가로 파는 십여 권을 골라 셈을 치루는 데 주인장 바로 옆에 놓여 있는 작은 종이 상자에 눈길이 갔다. 다른 책들은 알몸으로 전시되어 있는 데 상자 안에 있는 놈들은 비닐로 잘 포장되어 있었다. 맨 위에 있는 책은 그다지 관심 가는 책이 아니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들춰보니 가슴을 콩당콩당 뛰게 만드는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맘에 드는 제목에 끌려 내용을 살펴보니 꼭 우리나라로 데려오고 싶은 자료였다. 그런데 항상 그렇지만 빈약한 주머니 사정이 문제다. 더구나 출장길 끝물이라 내가 가진 돈으로는 턱도 없는 가격대였지만, 그 분야 전공자로 박물관에 있는 친구의 ‘가격은 비싸도 그런 자료는 무조건 들여오라’는 공갈(?)에 무리수를 두고 말았다.
그 자료가 바로 치안유지법기소자명부(治安維持法起訴者名簿)이다. 1928년부터 1932년 2월까지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체포되어 기소된 사람들을 1932년 7월에 조사해서 명부를 만들고 철필로 긁어 등사해 만든 프린트물이다. 이 명부에는 어찌 보면 당연하게도 당시 일본에서 활동하던 다수의 조선인이 등장한다.
그 중에서도 1929년 11월부터 1930년 2월 검거(檢擧)를 중심으로 7월 16일까지의 사건을 수록한 2·26사건에 조선인들의 이름이 집중된다. 그 사건의 도쿄(東京)편에는 김수암(金水岩), 김쌍암(金雙岩), 정용삼(鄭龍三)이 보이고, 1930년 2월 삐라 살포 건에는 이의석(李義錫), 김두용(金斗鎔), 임철섭(林徹燮) 등이 포함되어 있다.
1931년 5월 30일부터 공판이 개시된 같은 사건의 오사카(大阪)편에는 우리 제주와 관련 있는 인물이 등장한다. 제주 조천 출신의 독립운동가로 200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追敍)된 김문준(金文準 1894~1936)과 서귀포 대정 출신의 독립 운동가이자 사회주의 운동가로 4·3 당시 무장대 총사령관 김달삼(金達三 본명 이승진)의 장인인 강문석(姜文錫 1906~?)이 그들이다.
1930년 10월 24일 일본 공산당의 공판투쟁을 지원하기 위해 일어났던 교토(京都)형무소습격사건 관련자로는 김린이(金麟伊)와 신동공(伸銅工)인 김성석(金盛錫), 최봉수(崔鳳秀), 배갑룡(裴甲龍), 김용수(金容洙) 등이 보인다.
이 치안유지법은 천황제나 사유재산제를 부정하는 운동을 단속하는 것을 목적으로 1925년 제정된 것으로 초기에는 공산주의나 사회주의, 노동운동에서 나중에는 자유주의나 시민운동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표현의 자유와 결사의 자유를 탄압하는 데 이용되었다.
그 엄중하던 시절 그것도 일본 본토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활동했던 우리 선인들의 자취가 그대로 남아 있는 자료라 그 가치가 높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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