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지감귤, 위기를 기회로
노지감귤, 위기를 기회로
  • 한국현 서귀포지사장
  • 승인 2019.12.2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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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귤은 여전히 제주의 생명산업이다. 관광이 그 자리를 조금씩 잠식하고 있지만 제주의 1차산업을 지탱하고 있는 든든한 버팀목이다. 특히 노지감귤은 농가들의 삶이다.
노지감귤이 제 값을 받지 못하고 있다. 기대했던 가격 회복은커녕 농가의 최저 기대치 이하로 떨어졌다. 급기야 상품까지 시장에서 격리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상품에 대한 시장 격리는 올해 처음이다. 물론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고 있다.
제주도는 올해산 노지감귤 가격이 회복세를 보이지 않자 상품과인 2L(횡경 67㎜ 이상, 71㎜ 미만) 규격의 대과를 수매해 가공용으로 처리하고 있다. 열매 크기가 45㎜ 이상, 49㎜ 미만인 2S과(果)도 마찬가지다. 지난해에는 2S 규격도 당도가 10브릭스 이상이면 상품으로 출하됐다.
상품으로 도매시장에 나가던 2Lㆍ2S과가 가공용으로 처리되면서 슬픈 진풍경도 나타나고 있다. 음료회사 제주감귤가공공장 앞에는 이른 아침부터 가공용 감귤을 실은 트럭들이 길게 주차돼 있다. 해마다 반복되는 풍경이지만 2Lㆍ2S과의 시장 격리가 처음으로 시행되고 있는 올해는 더 혼잡하다. 지나가는 관광객들이 영문도 모른 채 “제주도에서만 볼 수 있는 장관”이라며 중얼대지만 농가들의 마음은 타들어 간다.
지난 주 대도시 도매시장에서 거래된 노지감귤의 평균 경락 가격은 5㎏ 기준으로 5000원대까지 추락했다. 노지감귤이 본격적으로 출하될 때의 7000원대와 비교하면 많이 떨어졌다. 2L와 2S의 시장 격리 발표 이후에는 6000원대로 진입했으나 농가들이 만족할 만한 가격은 아니다.
농가들은 5㎏ 당 7000∼8000원을 받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래야 농약값과 인건비 등으로 지출하고 남은 돈으로 밥이라도 먹는다는 절박한 심정을 토로하며 가격 상승을 기대하고 있다. 
가격이 회복되지 않는 이유가 있다. 올해산 노지감귤은 당도가 낮아 소비자들이 외면하고 있다고 한다. 서울 가락동시장 경매사와 중도매인들의 얘기다.
감귤이 한창 익을 때인 가을에 발생한 잇따른 태풍과 비 날씨가 당도에 영향을 주었다. 실제 올 가을에는 태풍 3개가 제주를 강타했다. 가을철에 태풍이 3번이나 발생한 것은 드문 일이다. 여기에 잦은 비 날씨도 당도를 떨어뜨렸다. 맨 처음 출하되는 극조생은 가을 햇볕을 많이 받아야 하는데 올해는 태풍과 비가 발목을 잡았다.      
경기침체에 따른 소비둔화도 한 몫을 하고 있다. 경제가 안 좋다 보니 감귤뿐만 아니라 다른 과일도 가격이 전년 대비 20∼30% 떨어졌다.
날씨가 노지감귤의 당도를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했고 전반적인 경기침체가 소비를 둔화시키고 있다. 설 특수를 기대하며…. 올해는 그렇다 치자. 내년에도 감귤은 생산된다. 하지만 내년에는 올해와 같으면 안된다. 농가들의 자구노력과 행정의 관심이 그 어느때보다 절실하다.
지금처럼으론 안 된다는 위기감 속에 서귀포시가 해마다 고품질 감귤을 생산하는 농가 5명을 감귤명인 1호로 지정하고, 이들의 ‘연간 조수입 억대’ 노하우를 전파하고 있어 주목된다. 품종별로는 비가림 온주, 한라봉, 레드향, 성목이식(조생ㆍ유라조생) 등이다.
명인들은 해당 감귤 품목을 재배하는 농가를 대상으로 전정ㆍ접목 기술, 예비가지 관리 등 해거리 없이 고품질 감귤을 생산하는 노하우 전수하게 된다.
제주도도 감귤정책의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원희룡 지사는 지난 24일 주간정책 조정회의에서 “맛없는 감귤을 생산하고, 선별이 안 되서 그냥 내보내고, 가격이 떨어지면 예산을 투입하는 악순환은 이제 그만 해야 한다”며 “양으로 들어가는 예산을 맛을 높이는데 집중적으로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농가들도 변해야 한다. 지금의 농법을 고집하지 말고 과감한 품종갱신과 성목이식을 통해 고품질 감귤을 생산해야 한다. 위기는 기회라고 했다.

한국현 서귀포지사장 기자  bomok@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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