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에서 배우는 ‘삶’…“마음의 양식을 심어요”
책 속에서 배우는 ‘삶’…“마음의 양식을 심어요”
  • 제주일보
  • 승인 2019.12.19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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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DC와 함께하는 청소년 추천도서 [2] 사서들이 추천하는 권장 도서

일상의 고마움·다름의 이해·감정 연습…내적세계 ‘쑥쑥’

겨울방학과 연말연시를 맞아 제주일보와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이사장 문대림)는 독서와 함께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시작할 수 있도록 ‘사서들이 권하는 청소년 권장도서’를 선정했다. 분야별로 다양한 권장도서들은 제주도서관 이찬미 사서, 서귀포도서관 신석민·양윤정 사서, 한수풀도서관 강희진·양경연 사서, 제남도서관 지기룡 사서 등이 추천·소개하면서 재미와 흥미를 더해주고 있다.

 

, 미자!박숲 지음, 노란상상 펴냄

팔팔 끓인 후 한소끔 식힌 따끈한 물에 오미자차를 타 먹기 좋은 겨울날이다. 씨에는 쓰고 매운 맛, 껍질에는 신맛, 과육에는 단맛, 전체적으로 짠맛이 조화를 이루는 열매라 붙여진 이름 오미자(五味子). 박숲이 쓰고 그린 , 미자!는 다섯 명의 일하는 여성, 미자씨가 노동을 하며 느끼는 다섯 가지 맛을 이야기하는 그림책이다.

청소부 김미자씨는 자신을 투명인간 취급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홀로 남아 쓴맛을 느끼며, 전기기사 신미자씨는 아줌마가 일을 제대로 할 수 있겠냐는 편견에 매운 맛을 보여주겠다고 각오를 다진다. 스턴트맨 미자씨는 촬영 중 아이를 구하러 바닷물에 뛰어들다가 짠맛을 보고, 이삿짐센터에서 일하는 손미자씨와 택배기사 이미자씨는 고객이 건네는 새콤한 귤과 달콤한 요구르트를 맛보며 새로운 시작을 돕는다는 기쁨과 가쁜 숨을 고르는 여유를 느낀다.

그림 속에 숨겨진 미자씨들의 이름 세 글자를 찾아내려면 꽤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평소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여성 노동자들의 이름을 불러주지 않는 우리의 세태를 꼬집는 듯하다. 하지만 그렇게 이름 없이 함께하는 미자씨들 덕택에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는 깨닫는다면, ‘우리는 모두 미자라는 나지막하고 묵직한 선언에 조용하지만 뜨거운 지지를 보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강희진 한수풀도서관 사서>

 

나의 지도책사라 파넬리 지음, 소동 펴냄

지도(地圖)의 사전적 의미는 지구 표면의 상태를 일정한 비율로 줄여, 이를 약속된 기호로 평면에 나타낸 그림이라고 한다. 이러한 사전적 정의를 가뿐히 무시하고 나도 지도에요!’라고 당당하게 주장하는 발칙하고(?) 통쾌한 책을 만났다. 사라 파넬리의 나의 지도책이다.

이 책은 지도의 사전적 정의에서 지구 표면의 상태‘’나의 상태로 바꿔놓고, 약속된 기호 따윈 없이 와 관련된 것들을 생각나는 대로 마구 풀어낸 그림들의 조합을 지도라고 우겨댄다. 사전적 의미에서 남는 거라곤 평면에 나타낸 그림이란 문구 정도이다. ‘내 배 속 지도에서는 선호도에 따라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으로 짐작되는) 케이크와 사탕이 배 속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으며, ‘나의 하루 지도에서는 아침 시간에 제일 싫은(것으로 짐작되는) 칫솔이 축척 따윈 신경쓰지 않는 엄청난 크기로 그려져 있다. ‘나는 내가 제일 잘 알아! 그냥 내가 그리고 싶은 대로 그릴 거야!’라고 선언하는 듯한 과감한 선과 그림들이 일면 통쾌하기까지 하다.

이 책의 또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이렇게 지도들이 로 수렴하다가, ‘우리 가족 지도’, ‘우리 마을 지도같이 다른 세계로 확장된다는 것이다. ‘나의 상태에서 나와 연결된 것들의 상태로 시선을 돌리는 것이 아이의 한 뼘 성장한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뿌듯해진다. 어린이 친구들이 이 책에 나온 지도를 따라 그리면서 자신과 외부세계를 조화롭게 살아가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길 기대해 본다. <강희진 한수풀도서관 사서>

 

도서관 여행 혼자가 익숙해지는 자유 권희린 지음, 네시간 펴냄

청소년들에게 도서관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제일 먼저 뭐가 떠오르는지 물어보면 어떤 대답이 나올까? 책이 빼곡하게 들어찬 서가? 기침 소리를 내는 것도 눈치가 보이는 조용한 열람실?

지루하고 답답한 곳이라고 대답할 대부분의 학생들에게 도서관 곳곳에 숨어있는 소소한 재미들을 보물찾기하듯이 꺼내 보여주는 이 책을 쥐여주고 싶다.

도서관 여행 안내서라는 제목에 걸맞게 서가 앞에서 내게 맞는 재미있는 책을 놀이처럼 고르는 방법, 나의 독서취향을 발견하는 법부터 시작해 도서관의 작은 공간들에서 발견할 수 있는 깨알 같은 잔재미들을 소개한다. 휴게실에서의 잠깐 수다가 얼마나 달콤한지, 책을 읽다가 머리를 식힐 수 있는 도서관 주변 산책로의 소중함에 설득당하고 나면, 도서관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까지 시선이 확장된다.

익숙한 공간을 조금 다르게 보고 사소한 것에 관심을 기울이며 사람에 대한 상상력을 발휘하는 것으로 도서관이 제목처럼 흥미로운 여행지로 변모하게 될 것이다. 겨울방학, 이불 속에서만 뒹굴 거리다가 잠깐 콧바람을 쐬고 싶을 때, 책에서 소개하는 방법들처럼 도서관의 구석구석으로 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 <강희진 한수풀도서관 사서>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신형철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책머리에서 저자는 그동안 써온 글들을 정리하면서 자신의 글이 대부분 슬픔에 대한 것이었으며 세월호사건과 아내의 수술과 같은 슬픔의 순간들을 지나오면서 그러한 순간들을 버텨내기 위해 써내려 간 글이라고 밝히고 있다.

영화 '벌새'에는 주인공 은희가 말없이 무너진 성수대교를 바라보는 장면이 있다. 카메라는 무너진 다리와 함께 은희의 어딘가 슬픈 얼굴을 지그시 비춰준다. 영화는 무너진 다리를 통해 그 시대와 세대가 겪은 일종의 심적 붕괴(슬픔)를 은희를 통해 응시하게 만든다. 관객은 그렇게 무너진 다리를 마주함으로써 어떤 슬픔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이 역시 '슬픔에 대한 공부'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의 저자는 타인의 슬픔을 완전히 내 것처럼 받아들이는 것은 힘들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타인의 슬픔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려는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슬픔에 대한 공부는 슬픈 공부라고. '벌새'의 은희처럼 누군가의 슬픔을 지그시 바라보는 것만이라도 할 수 있다면 완전할 수는 없겠지만 슬픔에 대한 공부는 다른 무엇보다 가치 있는 것이 될 것이다.

<지기룡 제남도서관 사서>

 

세계 곳곳의 너무 멋진 여자들케이트 샤츠 지음, 티티 펴냄

대개의 사람들은 존경하는 위인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꼽을 수 있는 남자위인은 차고 넘치게 말할 수 있다. 반면 여성위인이 몇 명인지 꼽아보라고 한다면 아마 열 손가락을 헤아리려고 해도 다 헤아리지 못할 것이다. 나만 해도 그렇다. 그도 그럴게 여느 아이들처럼 알고 있는 여성 위인은 김만덕, 신사임당이 고작이던 나는 취준생이 되어서는 롤모델로 삼은 여성위인을 묻는 면접관의 돌발 질문에 가까스로 김연아 선수를 대답했다. 오랜 기간이 지났음에도 겨우 단 한 명만을 더 대답할 수 있게 되었을 뿐이었다.

이건 개개인의 관심이 부족한 것에 책임을 돌려서는 안 된다. 저자 케이트 샤츠는 우리가 듣고 배우는 역사는 주로 남자들의 일, 남자가 공헌한 일에 중심을 두고 있다고 말하며, 이런 우리에게 세계 곳곳의 틀과 규칙과 경계를 허물고 당당히 사회를 개척해낸 40여 명의 여성을 소개하기 위해 이 책을 펴냈다고 밝히고 있다.

소개되는 여성들 모두를 전기적 일대기 형식으로 다루진 않지만, 에피소드 위주의로 여성위인들을 소개하기 때문에 독서에 친숙하지 않거나 집중력이 약한 아이들도 쉽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다양한 분야에 업적을 이룬 여성들을 알려주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가치가 있다. 앞으로 많은 여자아이들이 이 책을 보며 여성이란 이유만으로 가지 못할 길은 없다는 것을 깨닫고 꿈을 포기하지 않기를!

<양경연 한수풀도서관 사서>

제주일보 기자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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