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량한 대지에 움튼 생명력…발길 닿는 곳마다 비경
황량한 대지에 움튼 생명력…발길 닿는 곳마다 비경
  • 제주일보
  • 승인 2019.11.28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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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부. 은둔의 왕국 무스탕을 가다(4)
개미 마을을 출발해 한참을 걸은 끝에 닥마르 마을에 도착했다. 마을 초입에는 붉은 메밀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장관을 이루고 있다.
개미 마을을 출발해 한참을 걸은 끝에 닥마르 마을에 도착했다. 마을 초입에는 붉은 메밀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장관을 이루고 있다.

연이틀 11시간 이상 가파른 협곡을 오르내린 데다 갑자기 떨어진 기온 탓에 온몸이 떨리고 머리가 띵한 것이 감기에 걸린 듯 정신이 없습니다. 일행들이 걱정하는 듯해 속이 좋지 않아 그런다고 말하고 억지로 눈을 붙여보려 했지만 쉬이 잠이 들지 않습니다. 오늘 본 무스탕의 자연은 그 어떤 곳에서도 볼 수 없었던 모습이었습니다. 힘든 여정이었지만 가는 곳, 보는 것마다 새로운 것이라 설렜습니다.

1992년이 돼서야 외국인에게 문을 연 마지막 은둔의 땅무스탕, 이곳에는 척박한 땅과 거센 바람에 맞서 화석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시간을 거스르며 사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는 이곳은 고대부터 전해오는 독특한 역사와 순수한 티벳 문화가 그대로 보존돼 있어 살아 있는 박물관이라고도 불린답니다.

오지 여행을 나오면 시간을 잘 써야 많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새벽에 많은 사진을 찍기도 합니다. 이른 시간에 마을 이곳저곳을 다니다 보면 사람들이 살아가는 진솔한 순간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찍 일어난다고 서둘렀는데 저보다 더 부지런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팀 리더인 정희동씨. 닉네임이 마실님인 이분은 산악인이자 사진도 찍는 멋쟁이로 히말라야를 많이 다녔다고 합니다.

새벽에 동네를 둘러보고 온 그가 얼른 나가보라고 권하기에 카메라를 들고 나와봤더니 개미 마을 사람들이 염소와 소들을 목초지로 보내느라 시끌벅적합니다.

이 마을에서 우리 숙소가 제일 높은 곳에 자리했습니다. 숙소 주변에 있던 사다리를 오르니 마을 전경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구름이 걷히며 히말라야 산군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그 아래로 집마다 아침밥을 짓는 연기가 피어오릅니다. 전형적인 티벳 마을의 모습, 참 아름답습니다.

위에서 보니 어떤 집은 이미 염소들이 나가 우리가 텅 비었고 이제야 염소젖을 짜는 집도 보입니다.

개미 마을 내 공동수도에서 주민들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개미 마을 내 공동수도에서 주민들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동네 중심지에 꽤 오래된 초르텐(불탑)과 마니차(불교 경전을 넣은 경통)가 있고 공동수도에는 마을 사람들이 나와 빨래를 하거나 채소를 씻고 양치질도 하며 두런두런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옛날 우리네 동네 우물가를 떠올리게 합니다.

개미 마을은 과거 티벳과 네팔군에 항쟁했던 캄파 게릴라의 마지막 캠프가 있었던 곳이랍니다. 그들은 자존을 위해 험한 무스탕을 누비며 목숨을 걸고 항쟁했지만 달라이라마의 항복 권유에 결국 굴복할 수밖에 없었답니다. 자존을 지키지 못한 것을 한스러워 한 이들이 연기처럼 산화했던 현장이 바로 이 마을이랍니다.

개미 마을을 다 둘러보고 나서 다시 트레킹을 시작했습니다.

마을을 벗어나 계곡으로 들어서자 주변에 사암으로 만들어진 기암들이 사방에 있어 지친 나그네의 눈을 즐겁게 해 줍니다. 가면 갈수록 붉은 사암 기둥이 빽빽이 둘러져 있어 마치 부처를 찾아온 스님들 모습 같기도 하고 무스탕의 왕을 호위하는 병사들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무스탕 트레킹 출발지인 추상부터 각양각색의 사암 지대가 계속 이어지고 있어 이곳 지질이 참 독특하다고 생각하며 한참을 걸었습니다.

멀리 넓은 벌판에 오래된 초르텐이 보여 인근에 마을이 있는가 하고 둘러보니 사방에 초르텐이 서 있고 그 너머로 붉은 사암 지대가 황홀하게 펼쳐집니다.

반대 쪽에는 놀랍게도 붉은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습니다. 무슨 꽃인가 하고 얼른 다가가 살펴보니 붉은 메밀꽃입니다.

붉은 사암과 어우러진 붉은 메밀꽃, 순간 이렇게 삭막한 곳에 이런 아름다움이 있다니하고 탄성을 지르고 말았습니다.

붉은 메밀꽃이 장관을 이룬 아름다운 꽃밭을 마주하니 그동안 피곤이 싹 사라지는 듯합니다.

정신없이 돌아다니다 조금 높은 지대에 올라서자 목적지인 닥마르 마을이 보입니다. 그리고 그 뒤로 붉은 사암 절벽이 병풍처럼 둘러져 있습니다. 절벽 곳곳에 동굴이 보이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과거에 사람이 살았던 곳이고 캄파 게릴라들이 숨어 지내기도 했답니다. <계속>

<서재철 본사 객원 기자>

닥마르 마을로 가는 트레킹 도중에 본 마니석(불경을 새긴 돌) 무더기.
닥마르 마을로 가는 트레킹 도중에 본 마니석(불경을 새긴 돌) 무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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