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유산
위대한 유산
  • 뉴제주일보
  • 승인 2019.11.17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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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환 제주지역사회교육협의회 부회장

다섯째가 공부를 잘하는 줄은 막연하게 알고 있었는데, 담임교사와 상담하고 돌아 온 아내가 놀라운 소식을 전한다.

모든 시험 문제가 사전에 유출이나 된 듯 막내의 경이로운 점수를 보면서 우리 부부는 깜짝 놀랐다.

막내의 열공동기가 더 충격적이다.

돈을 버는 대로 다 써버리는 아빠에게 미래를 기대할 수 없었고 공부를 못 하면 나중에 굶어 죽을지 몰라서 살아남기 위해서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매일같이 게임만 하는 아들들에게 자극을 주고 싶어서 대학을 못 가면 아빠는 돈이 안 들어서 더 좋다고 말하곤 했는데, 옆에서 그 말을 듣던 막내에게는 공부가 생존 문제로 받아들여졌던 모양이다.

아이들이 공부하는 모습을 잠깐만 봐도 책상에 앉아서 공부하고 있다고 스스로 위안을 삼고 있을 뿐인지, 꼭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하는 것인지 신기하게도 보인다. 우리 집의 몇 공붓벌레의 모습은 확연히 달랐다.

공부를 잘했던 둘째에게 물어봤었다.

엄마 아빠가 한글을 가르쳐 준 기억도, 덧셈을 가르쳐 준 기억도 없는데 너는 어떻게 그렇게 공부를 잘하게 됐냐?”

자신은 엄마 아빠가 언니 공부에 신경 쓰는 모습을 보고, 언니한테 쏠려 있는 관심을 자신도 받고 싶었다는 것이다.

아이들의 공부는 옆에서 거든다고 부모 생각처럼 되는 것이 아니고 동기 부여도 정말 의도치 않게 형성되는 것 같다.

지난해 넷째가 고교에 입학하게 되니 아내가 우리도 이제는 아이들 공부에 신경 좀 써보자고 했다. 다른 부모들은 입시 준비에 열성을 다하는 데 우리는 너무 무신경해서 큰아이들에게 미안했다는 것이다.

주변 엄마들을 통해 여러 정보를 알아보더니 첫 번째로 할 일이 소문난 학원을 보내야 한단다.

그때부터 우리 부부는 지금까지 부지런히 아들을 픽업하고 있다. 학원에 보내는 것과 등하교 픽업 여부에 성적은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그마저도 못 해주면 성적이 더 떨어질까 봐 섣불리 그만하자고도 못 할 뿐이다.

아내의 손에 이끌려 학교와 학원으로부터 대학 입시 요강을 두 번이나 들었지만, 너무 복잡해서 이해가 안 됐고 우리 부부가 감당할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아내는 학부모 모임에도 참가하고 두어 달 아들을 챙겨 주는 듯하더니 결국에는 포기했다.

어느 부모에게나 자식은 삶의 큰 의미다. 부모로서 아이들이 공부를 잘하길 바라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다른 부모들처럼 전폭적인 지원을 해 주지는 못 했지만, 지금은 공부를 잘하든 못 하든 걱정하지 않는다.

다섯 아이는 자연스럽게 가정 내에서 이미 세상 사는 법을 배웠다는 것을 느낀다.

먹는 것, 입는 것, 잠자는 것 등 모든 삶 속에서 경쟁이 됐다. 배려와 협력, 공감하고 인정받는 법을 배웠다. 필자가 아이들에게 준 가장 큰 유산은 형제자매다.

다섯 아이 모두 공부를 잘하든 못 하든 세상에 쓰일 재목들이다. 어디에 가서도 인정받을 아이들이고 잘 해낼 아이들로 성장하고 있다. 우리 아이들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지, 어려움을 어떤 마음으로 극복하고 받아들일지 보인다.

조국 전 장관의 일로 우리는 보통 학생들로서는 엄두를 낼 수 없는 학종 스펙을 만들어 내는 것을 보며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수시든 정시든 부와 권력을 가진 사람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그래도 지역 안배가 있는 수시가 조금이라도 유리하고 점수로 줄 세우기보다는 다양한 전형으로 인재를 선발한다는 측면에서 장기적인 교육의 방향으로는 수시 확대가 맞다.

그럼에도 대다수 학부모는 학종보다 정시를 공정하다고 여기고 스펙 관리도 못 하고 내신도 미처 못 챙긴 아이들에게도 충분한 기회를 주기 위해서 당분간 정시 비율 확대를 희망함에 필자도 동의한다.

그저 우리 집 아이들의 경쟁력은 수시거나 정시거나 인서울이거나 제주에 남거나 무관하리라 믿으며 나 홀로 걱정이 없는 듯하다.

뉴제주일보  webmaster@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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