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피어도, 늙음은 온다
꽃은 피어도, 늙음은 온다
  • 제주일보
  • 승인 2019.11.12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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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가영 수필가

나에게서 나이를 뺏어가지 마세요. 이것은 내가 살아오면서 손에 넣은 것입니다.’라는 글귀가 생각난다.

인생을 살면서 노인이라고 불리는 문턱에서 잠시 멈칫거리게 된다.

가족시대에는 노인은 가족 안에 앉을 곳이 있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그저 나이를 먹었다는 것뿐으로라도 옹()이라는 의미가 있었다. ‘은 다음 세계에 가까운 사람의 뜻으로 통했다. 신의 세계에 젊은이나 장년보다 한 발 더 다가선 사람의 이미지로 신화나 연극에 나타나는 것은 그 때문이었다.

가족시대에 있던 노인의 이미지는 가정시대의 그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가정시대는 노인을 쇠약해진 사람으로 밖에 여기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현자는커녕 돌봐야 할 짐이 되어 버렸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그래서인가 경로의 날 표어에 아직도 넘치는 힘. 젊음이여 다시 한 번이라는 게 붙어 있었다. 혼자 웃었다.

언제까지나 젊고 강하고 아름답고, 그런 것에만 연연하는 것 보다 늙음을 받아들이는 쪽도 나쁘지 않을 텐데 하고 생각해본다.

죽으면 죽으리라 하는 말처럼 늙으면 늙으리라고 한들 어떠랴.

산다는 건 생활하는 것과 다르다.

산다는 것은 나이가 든다는 것이다.

아무리 볼품없는 고목에도 연륜이 있다. 과거가 있다. 추억할 수 있는 아름다움이 있다. 상처를 내면 하얀 액체가 흐른다.

청년은 젊다는 것으로 용서 받는다. 중년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젊음도 없고 쓸모가 없어진 노인은 그렇지 않다. 추하고 쓸모 없을 때 사회는 차갑다. 이제는 그런 시대가 되어버렸다.

애써 젊어지려고만 할 게 아니라 현명한 노인이 되어야 한다고 자신에게 다짐해 본다. 젊은이들에게 관대하고 용서하고 그렇게 따뜻한 노인, 그 길밖엔 없다.

노인의 고독은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시간까지 왔다는 것이다.

사람은 두 번 인생을 살 수 없다는 걸 아플 만큼 실감하는 때가 노인이라는 시간이다.

그러나 여전히 연령이 많아도 권력과 지위를 얻는데 정신이 없는 노인을 본다. 그럴 때마다 무신경하거나 자신의 인생에 자신이 없거나, 어느 쪽이 아닐까 한다. 애처럽다고 느끼는 오만한 생각을 남몰래 품어본다.

가을 들녘에 피어있는 저 꽃들을 앞으로 몇 번 더 볼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 겸허해진다.

젊은이들에게 선뜻 자리를 내어 주는 노인의 들녘은 더 아름답지 않을까.

 

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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