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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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제주일보
  • 승인 2019.11.05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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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신 수필가

꽃길만 걷게 해줄게. 신랑 〇〇〇, 신부〇〇〇

성당 입구에 걸린 현수막이 바람결 따라 방싯방싯 웃는다. 신랑, 신부는 보름달처럼 환하고 아름답다. 둘이 나란히 가는 길에 꽃길만 펼쳐지길 기도하며 힘차게 박수를 친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서로를 사랑하겠노라는 서약을 하고, 사랑의 징표인 반지를 주고받는다. 결혼반지는 영속성과 맹세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증인으로 참석한 우리 부부의 손가락에도 투명반지가 있음이다. 오늘의 맹세가 영원하기를 바란다.

신부님은 강론을 시작하면서 꽃길만 걷게 해준다는 말을 여러분은 믿나요?” 라고 묻는다. 대답은 하하하웃음소리다. 누구나 꽃길만을 걷고 싶어 하지만, 결코 꽃길만 걸을 수 없는 게 인생임을 다 안다.

결혼생활을 뒤돌아보니 결코 꽃길만은 아니었다. 살랑살랑 봄바람에 꽃길일 때도 있었지만, 이리저리 찔리는 가시밭길을 걷기도 하고, 진흙탕에서 힘겹게 한걸음씩 내디딜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내가 있잖아.’ 그 한 마디에 힘을 얻고 내미는 손잡고 다시 걸어온 길이다. 부부 간의 말 한 마디가 꽃길이 될 수 있음이다.

신은 공평하시어 한 사람에게 모든 걸 다 주지 않는다. 흉과 복을 적절히 주신다. 산전수전 다 겪은 풍상꾼에게도 단련된 만큼의 지혜와 복을 주신다. 시련도 함께 견뎌낼 때 삶은 빛나고, 부부의 연은 더 끈끈해진다.

사랑은 때때로 변한다. 서로 사랑했어도 관계가 나빠질 때가 있는 법이다. 장점과 단점이 없는 사람은 없다. 장단점은 양면성이라 때로는 좋게, 때로는 나쁘게 보인다. 서로가 좋을 때는 문제될 게 없다. 상대가 미워지고 점점 적대감이 쌓일 때 자칫하면 서로에게 상처를 남길 수 있다.

호수가 잔잔하지 않고 일그러지면 호수에 비친 상대방도 일그러지게 보이는 법이다. 상대방이 전과 같지 않다고 느껴질 때는 내 마음도 일그러져 있음이다. 출렁이는 마음을 가라 앉히고 상대를 다시 보면 달리 보일 것이다. 그걸 알면서도 상대에게 화살을 겨눌 때가 있다. 결혼생활은 고속도로처럼 앞길이 뻥 뚫려서 아무런 제약 없이 빵빵 달려갈 수 있는 길이 아니다. 비포장도로가 펼쳐질 수도 있고, 예측하기 힘든 앞이 막막한 길일 수도 있다.

험준한 바위산의 돌 틈에서도 꽃은 피어난다. 버거운 짐을 지고 산을 오른다 해도 한 줄기 바람 속에 실려 온 꽃향기를 맡을 수 있다면 그게 꽃길일 수 있다.

노사연의 바램에 있는 노랫말이 좋아 가끔 부른다. ‘나는 사막을 걷는다 해도 꽃길이라 생각할 겁니다.’ ‘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입니다.’ 손에 물이 마를 날 없이 힘겹게 하루를 지탱하는 삶일지라도 서로의 가슴으로 온기를 주고받을 때 부부 사이에는 꽃이 피어날 것이고 점점 익어갈 것이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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