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진정 제주를 사랑하는가
그대 진정 제주를 사랑하는가
  • 뉴제주일보
  • 승인 2019.09.22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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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중훈 시인·성산읍노인회장

한 때 나와 같은 공직생활을 하며 친분을 쌓았던 서울 사는 부부가 제주를 다녀갔다. 지금은 시인으로 활동 중인 이들 부부의 제주 방문은 실로 20여 년만이다.

젊은 시절 행정관리라는 닉네임을 달고 온몸을 던지던 그들 부부가 지금은 시인이 돼 나를 찾았으니, 그들과 같은 길을 걸었었고 또 시인이라는 길을 같이 걷고 있다는 점에서 남다른 정이 갔다.

희수(喜壽)를 훌쩍 넘긴 그들 내외의 모습에선 질긴 연륜과 함께 삶의 철학의 진득함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체류 기간 중 하루 시간을 내어 내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성산읍 삼달리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으로 그들을 안내했다.

제주 여행 중 김영갑 갤러리가 코스에 들어있다면 그 여행의 콘셉트를 힐링이라 불러도 무방하다라고 한 어느 여행작가의 말처럼 그 곳은 김영갑이라는 한 사진작가가 목숨으로 사랑한 제주의 참모습이 곳곳에 배어 있는 곳이다.

유명 갤러리의 번듯함과는 거리가 먼, 제주의 오롯한 자연과 화평스러운 포근함이 그 곳을 찾는 이들에게 삶의 의미를 깨닫게 하는 곳이어서 더욱 그러하다.

사진에 미친 김영갑은 고향인 충청도를 떠나 1982년부터 서울과 제주를 오가며 섬의 매력에 빠지고 있었다. 그러던 그는 섬에 살아보지 않고서는 섬의 외로움을 느낄 수 없다라며 제주에 뿌리를 내렸다. 그 때가 1985년이다. 그 해 늦가을, 나는 제주시 어느 조그만 호텔 로비에서 그를 만났다.

우연히 들린 그 호텔 로비에는 제주 억새를 주제로 한 시와 사진전이 열리고 있었다. 그 곳에서 나의 눈길을 끈 것은 시와 사진 작품보다는 작품 받침대인 이젤에 있었다. 일반적으로 이젤의 재질은 대부분 잘 정제된 철재 혹은 나무들로 만들어진다는 것이 상식이다. 그렇지만 이 전시장에선 그런 규격화된 이젤의 고정관념은 존재하지 않았다. 김영갑은 버려진 제주도의 옛 초가집 서까래들을 직접 주워 모아 이젤을 형상화했다. 그것은 한마디로 예술적 가치 이상의 아우라였다.

제주 들녘의 억새밭을 배경으로 한 그의 사진들과 제주인의 삶을 억새로 노래한 제주의 여류시인 김순이의 시 작품들과 제주의 전통 억새 초가집 서까래에서 얻은 이젤이 콜라보를 이룬 이것은 바로 억새 같은 삶을 사는 제주 사람의 영혼, 곧 제주다움이었다.

김영갑은 이처럼 제주 사람 이상으로 제주의 산과 들과 바다는 물론 제주 사람들을 닮아가며 늘 함께 살고 있었다. 제주초가지붕을 지탱해 주던 그러나 지금은 보잘것 없이 버려진 그 서까래에 또 다른 생명을 불어넣듯 모든 자연에서 꿈틀대는 제주인의 아름다운 속살을 찾아내려 애썼다.

손바닥만 한 창으로 내다본 세상은 기적처럼 신비롭고 경이로웠다라고 회고한 그의 에세이(‘그 섬에 내가 있었네’ 2004)에서처럼 김영갑의 손바닥만 한 카메라 렌즈 속에는 언제나 아름다운 제주의 자연과 제주인의 영혼이 담겨 있었다.

두모악을 뒤로하고 돌아오는 길에 친구 부부는 제주에 내려와서 살면 어떨까라면서 나의 의견을 물었다. 이 말은 김영갑이 그의 마지막 에세이집을 들고 나를 찾아왔던 날 그와 동행했던 그의 후배작가가 김영갑에게 원했던 말과 똑같았다.

김영갑의 대답은 간단했다.

제주도의 자연풍광을 사진에 담기는 쉽다. 그렇지만 제주도의 속살, 그들의 정체성을 어떻게 담아내느냐 하는 것은 쉽지 않다. 나무 한 그루, 부러진 나뭇가지 하나일지라도 그 것이 제주인의 모습으로 다가올 때 내 카메라 앵글은 따라간다. 그 것이 내가 제주에 살고 있는 이유다.”

아직도 내 기억 속에 살아있는 그 때 그의 말, 그 것은 바로 작가로서의 생명이며 제주에 살고자 하는 자가 취할 덕목이다.

그대여! 진정 제주를 사랑하는가? 그렇다면 숨겨진 제주인의 속살을 들여다보아라 그리고 아직도 아물지 않은 그들의 아름다운 상처에 말을 걸어 보아라.

뉴제주일보  webmaster@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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