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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
어린 왕자
  • 제주일보
  • 승인 2019.08.13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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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수 시인·문화기획가

중학교 시절이었던 것 같다. 라디오 음악 방송을 듣고 있었다. 그날의 화제는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이었다.

그런데 게스트로 나온 가수 한 사람이 어린 왕자라는 책을 거론했다. 그는 어린 왕자를 다섯 번 읽었다고 했다. 한 번으로는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어서, 그 의미를 알기 위해서 읽다 보니 어느 새 다섯 번이나 읽게 됐고 그제야 어렴풋이 어린 왕자라는 책이 함축하고 있는 의미를 짐작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나도 어린 왕자를 다섯 번 읽었다. 다섯 번이라는 숫자 너머에 뭔가 커다란 깨달음이 숨겨져 있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어린 왕자의 의미를 미처 깨닫지 못 하고 있다. 지금도. 볼 때마다 느낌이 다르기 때문이다. 글자 하나하나는 똑 같은데 볼 때마다 의미가 다 달랐다. 내 삶의 전부가 그 책 속에 다 들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가령 중학교 때는 보아뱀에 대한 이야기가 가슴에 남았다면 지금은 왕이 사는 별이나 사업가가 사는 별혹은 책을 쓰는 지리학자가 사는 별이야기가 가슴을 울린다. 아마 그동안 살아 온 내 삶의 경험치가 반영됐기 때문이리라.

어린 왕자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고 한다. 어린이들이 어린 왕자를 읽으며 이라는 낯선 세계를 동경하며 미래에 대한 꿈을 꾸는 동안 어른인 누군가는 지나온 삶을 참회하고 잃어버린 순수의 시간에 대한 안타까움과 아쉬움을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 어쩌면 어린 왕자처럼 이 지구에는 자신이 찾는 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저 하늘 어딘가에 있는 자신만의 을 찾아 떠나야 하는 운명의 시간이 다가오는 것을 실감하게 될지도 모른다.

어린이는 가슴으로 세상을 느끼고 어른은 머리로 세상을 바라본다. 어린이들은 세상과 자기 자신을 동일시하는 반면 어른들은 자기 자신과 세상을 분리해서 바라보려고 한다. 이것을 우리는 성숙이라는 멋진 말로 포장해서 사용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성숙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가슴에서 머리로의 수직적 이동을 의미한다. 그 이동을 통해 어린이와 달리 어른들은 논리적이고 계산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노하우를 얻게 된다.

어린 왕자에 그려지고 있는 6개의 별이 바로 그런 세상이다. 권력욕에 사로잡힌 왕이 사는 별’, 칭찬만 요구하는 허영심에 가득 찬 사나이가 사는 별’, 술 먹는 게 부끄러워 다시 술을 먹는 술꾼이 사는 별’, 황금만능주의에 매몰된 사업가가 사는 별’, 가로등을 끄고 켜면서 다람쥐 쳇바퀴 돌 듯이 사는 가로등 끄고 켜는 사람이 사는 별’, 지리책을 쓰면서도 실제의 산과 강의 위치를 모르는 지리학자가 사는 별’.

어린 왕자는 이 여섯 개의 별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납득하지 못 한다. 그들은 모두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있으며 자기만의 세계에서 벗어나려는 생각도 하지 않는다. 타인이 없기 때문에 관계를 맺을 필요가 없다. 마치 요즘 문제가 되는 은둔형 외톨이를 보는 것 같다.

우리는 흔히 어른이 되면 자기만의 세계를 가져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그렇지 못 하면 미숙한 것이다. 그러나 진정으로 성숙한 것은 관계를 맺는 것이다. 자기만의 세계를 갖는 것에서 머무르지 않고 다른 세계와 아름다운 관계를 맺을 수 있어야 성숙한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아름다운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것일까?

생텍쥐페리는 그 과정을 길들이기라고 명명하면서 길들이기 위해서는 참을성이 있어야 한다고 언급한다.

그렇게 길들이고 길들여져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각양각색 사람의 마음을 얻기 위한 것이다.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얻을 수 있어야 지구는 아름다워진다.

요즘 온 나라가 아니 온 지구가 어수선하다. 모두 자기만의 세계를 주장하고 다른 세계와 관계 맺기에는 관심이 없다.

어린 왕자가 싫어하는 여섯 개의 별에 사는 사람들을 닮았다. 어린 왕자가 왜 뱀의 도움을 받아 지구를 떠나려고 했는지 되새겨 봤으면 좋겠다.

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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